<취재일기>농림부 발뺌과 정치권 뒷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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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손톱 쑤시는건 알아도 염통 곪는건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목전의 일에는 아등바등 하면서 정작 큰일은 알아채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말한다.

올초 터져나온 한보사태는 나라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특혜대출 5조원에 여론은 경악했다.야당도 사생결단식의 공세를 펴댔다.

그런데 5조원에는 나라가 들썩거렸지만 국가예산 수십조원이 투입된 대형사업의 부실화 요인에는 아무도 신경을 안쓰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농림부는 지난 92년부터 농어촌 구조개선사업에 착수했다.98년까지 무려 42조원이 투자되는 단군이래 최대 사업이다.지난해까지 이미 수십조원이 들어갔다.문제는 이렇듯 엄청난 예산이 적정하게 집행되는지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11월 이같은 문제점을 심층추적해 보도했다.그러자 농림부가 펄펄 뛰었다.“부작용이 좀 있지만 잘 되고 있다”는 것이다.농림부는 언론중재위에 제소까지 해가며 집요하게 정정보도를 요구했다.당시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었지만 국가예산의 이런 어마어마한 낭비적 집행실태는 야당의원 1~2명의 수박겉핥기식 언급으로 지나가버렸다.

그러나 진상이 드러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이달초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농촌구조개선사업의 실태보고서를 재정경제원에 제출했다.

보고서는“이 사업은 타당성과 경제성에 대한 검토가 부족한채 시행됐고 각종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재원의 낭비와 함께 장기적으로 농가의 부채누적을 초래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언론보도를'허위'라며 제소했던 농림부는 KDI보고가 나오자“우리도 문제점을 인식해 이미 개선하고 있다”며 발뺌했다.

거액의 예산이 부적절하게 낭비되고 농정이 망가지는게 확인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여야 정치권은 대선준비에만 혈안이다.

정부 역시 농정실패를 자인할리 만무하다.따져 묻는 사람이 없으니 누군가 책임질 사람이 나올 것 같지도 않다.손톱이 아프면 난리를 치면서도 정작 국가의 기간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그게 우리 현실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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