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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 지키는 건 숙명, 다시 태어나도 서애 종손 하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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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호 20면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에 있는 서애 류성룡 종가의 고택. 14대 종손 류영하 할아버지, 종부 최소희 할머니는 지금 상중이다. 신동연 기자

경상북도 안동 하회마을은 시간이 중첩된 곳이다. 400여 년을 내려온 기와집과 골목까지 말끔히 포장된 21세기의 시멘트 도로가 공존한다. 그 한복판에 서애(西厓) 류성룡 종가 충효당(忠孝堂)이 있었다. 겨울비가 내리던 18일 충효당에는 마당 안쪽으로 고급 승용차들이 들어서 있었다.

마을의 자랑 서애 류성룡 종가

충효당 방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서애 14대 종손인 류영하(83)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삼베로 지은 제쇠(齊衰·상중에 입는 옷) 차림이었다. 류 할아버지는 “내가 지금 상중이에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오늘 계모의 삭망제사(朔望祭祀,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에 간략하게 드리는 제사)가 있었다”며 “초하루가 설날이어서 자식들이 오지 못할까 봐 제사를 당겼다”고 설명했다.

계모는 지난해 10월 22일 돌아가신 서애 13대 종부 고 박필순 여사를 말한다. 마당에 늘어서 있던 차들이 생각났다.류 할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원래 부모상은 3년을 나야 돼. 그런데 그거 지키는 집이 거의 없어요. 지난해 학봉(鶴峯·김성일·조선 중기 때의 명신이자 학자)의 종손이 돌아가셨는데 차종손이 3년 탈상을 한다데. 나도 3년 탈상을 해야 하는데 90 먹은 노인이 하겠나. 학봉 차종손은 젊으니까. 젊다고 해도 70이 다 됐지만, 허허.”

서애 종가도 어쩔 수 없는 현실에는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류 할아버지는 그래도 제례만은 전통을 고수한다고 했다.“남아 있는 게 제례예요. 제사는 성의지. 살아 있는 어른에게 효도하는 것처럼 돌아가신 어른에게도 효도를 하는 게 제사야.”
류 할아버지는 1년에 13번 제사를 지낸다. '주자가례'에 따라 고조까지 4대에 대한 제사를 지낸다. 그의 어머니가 두 분이니 총 9번이다. 설·추석 차례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서애 선생에 대한 불천위 제사가 있다.

번거로울 법도 한데 그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서애 종가만 한 데가 어디 있나”며 “다시 태어나도 서애 종손을 할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그의 자긍심은 종손을 대접하는 인근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근처 어딜 가도 서애 종손이라고 하면 제일 큰 자리를 줘요. 그게 자부심이지. 경기나 충청 지방만 해도 종손을 누가 알아 주나. 근데 여긴 다르지.”

종손을 대접해 주는 문화가 굳건해 종손이 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그도 한때는 서울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1972년 13대 종손인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모든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다.“종손은 숙명적으로 집을 지킬 의무가 있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아들도 내가 죽으면 집으로 올 거고. 장손자도 당연히 집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류 할아버지도 아쉬운 게 있다. 경제적인 문제다. 종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돈이 들어가는데 마땅한 수입이 없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종가의 경제적 기반이 토지였다. 해방 이후 토지 개혁을 실시하면서 종가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진 것이다.그래도 서애 종가는 나은 편이다. 제사 때마다 지손(친척)들이 알아서 돈을 갹출한다. 특히 서애 선생의 제사 때는 상당한 돈이 모인다. 지난해 들어온 부조액을 합쳤더니 300만원이 넘었다.

하회마을을 관광지로 개발해 얻는 수익도 적지 않은 보탬이 된다. 종가와 하회마을 전체를 관광 명소로 개발해 거기서 얻는 수익을 종가를 유지하는 데 쓸 수 있도록 했다. 관람료 수입 중 60%는 안동시가, 나머지 40%는 보존회가 갖고 보존회는 이 재원으로 종가 고위(남자 조상) 제사 때는 100만원, 비위(여자 조상) 때는 5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종가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결혼으로 인생을 선택한 종부의 부담이 만만치 않다. 류 할아버지도 “며느리는 쉽게 얻었는데, 장손자 결혼이 조금 걱정된다”고 말했다. ‘다시 태어나도 종부를 하겠느냐’고 묻자 서애 종부 최소희(81) 할머니는 “종부가 아니고 서애 종손 할 거야”라며 웃었다. 40년 가까이 서애 14대 종부로 살아온 할머니의 말에 여운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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