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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경제위기에는 상생협력이 살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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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소득정책(income policy)이란 게 있다. 가장 자본주의답지 않으면서도 자본주의의 폐해를 가장 효과적으로 치유하는 정책이다. 일반적으로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거꾸로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불황과 실업을 각오해야 한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는 게 소득정책이다. 노동자-사용자-정부가 합의해 임금상승률이 생산성 상승률을 웃돌지 않도록 유도하는 사회적 모델이다. 서로 양보하고 고통을 나눔으로써 실업과 인플레이션을 동시에 예방하는 것이다.

그제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노사민정(勞使民政) 비상대책회의를 구성하자고 공동 제안했다. 노사와 정부가 고통분담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실업자와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에 힘을 모으자는 것이다. 전형적인 소득정책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또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전자·SK텔레콤·포스코 등 30대 그룹도 경제위기를 맞아 중소기업에 대한 상생협력을 강화하기로 다짐했다. 협력업체의 위기가 대기업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협력업체에 대한 어음결제를 줄이는 대신 현금결제 비중을 더 높이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 소득정책은 기업 도산과 대량실업을 막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자기 입장에만 매몰되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와 대기업과 협력업체와의 상생협력을 환영한다. 상호 양보와 고통분담은 이성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이다.

문제는 민주노총이다. 그들은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그런 식으로는 경제가 살아난다고 보지 않는다”고 참여를 거부했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은 어떻게 해야 경제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그냥 이대로 자신들의 기득권만 유지된다면 경제위기가 술술 풀린다는 것인가. 그들은 외환위기 때도 협력업체와 비정규직의 희생 위에서 달콤한 열매를 독차지했던 전력이 있다. 이번에도 그런 환상에 사로잡힌 모양인데 국민적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