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소액주주들의 견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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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주 제일은행 소액주주 52명이 이철수(李喆洙).신광식(申光湜)전행장 등 전.현직 이사들을 상대로'주주대표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주주대표소송이란 기업경영진이 회사에 손해를 입혔을 경우 일정지분을 가진 소액주주들이 경영진에 책임을 물어 회사의 손해를 배상토록 요구하는 법적 절차다.

불과 0.5% 지분이 전체주주를 대표해 한보그룹에 대한 부실대출에 관여했던 이사들에게“은행에 입힌 손해를 개인돈으로 배상해 원상복구시켜 놓으라”고 요구했다.

이 소송은 한총련사태와 고액과외 학원비리 등 잇따른'큰 사건'에 묻혀 세간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그러나 한보사건의 원인이었던'관치금융'에 대한 저항과 함께 소액주주들도 이제부터 기업경영을 감시하겠다는 선언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다. 지난 4월 개정된 상법과 증권거래법에 1%(자본금 1천억원이상 기업은 0.5%,과거엔 5%)지분만 있으면 주주대표소송을 낼 수 있도록 법이 완화돼 이번 소송이 가능했다.

재경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장기업의'오너'인 대주주 1인 평균지분은 32%쯤 된다.우리기업들의 70%는 기관투자가나 쌈짓돈 털어 주식에 투자한 평범한 일반주주들이 떠받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그동안 이들 절대다수는 대주주가 비자금을 만들어 호화생활을 하거나 정치권로비 스캔들로 회사이미지를 땅에 떨어뜨리는 등의 전횡에도 그저 방관만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또 한보사건이나 김현철(金賢哲)씨 비리사건 등 기업의 정치권 로비행태는 기업의 대주주들이 자신을 회사주인으로 착각해 회사돈을 마구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 예로 지난주 1심판결이 난 한보사건 재판과정에서 한보그룹 정태수(鄭泰守)총회장은 회사돈을 마구 비자금으로 조성한데 대한 국민적 비난과 검찰의 기소에 대해“내 돈 내가 썼는데 무슨 잘못이냐”는 식으로 내내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소액주주들의 기업감시와 경영진에 대한 견제는 이러한 경영진의 착각을 일깨워 주고 우리기업들이 정치권 로비 등에 쓸데없이 기운을 소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한 방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특히 이번 제일은행과 같이 경영진이 정부의 인사개입 등으로 관.정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 소액주주들의 감시는 부당하게 기업활동에 개입하는 권력에 대한 감시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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