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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야마 “미 대북 노선 큰 틀 유지될 것” 이재오 “한반도 운명 한국인이 결정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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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나라당 이재오 전 의원은 미국 워싱턴의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SAIS)에서 객원교수로 한반도 문제 등을 연구하면서 대학원생들에게 한국 현대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그가 올해 초 프랜시스 후쿠야마 SAIS 교수와 세계와 동북아시아, 한반도 정세 등을 짚어보는 좌담회를 가졌다. 후쿠야마 교수의 사무실에서였다. 후쿠야마 교수는 1992년 ‘이데올로기의 대결은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났다’는 내용의 저서 『역사의 종언』을 출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에서 대담하고 있는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左)과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


▶이재오 : 냉전 이후 미국은 세계의 패권을 잡고, 신자유주의적인 세계 질서를 형성하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자기 중심적이고, 일방주의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정권의 등장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는 바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미국 국민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기 때문이죠.

▶후쿠야마 : 지난 8년 동안 미국의 신뢰도는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라크전쟁이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고, 민주주의를 세계에 확산시켜 세계 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바꾸려는 욕심은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신뢰도도 추락했습니다. 이제 미국은 다극화한 세계를 포용해야 합니다. 미국이 외교· 안보 문제를 홀로 주도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 중국·러시아·인도 등과 같은 나라와 협력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이재오 :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 직접 대화하는 노력을 강화할 걸로 예상됩니다. 이 경우 북한 핵문제는 북·미회담에서 다뤄지고, 6자회담은 동북아 평화 문제를 논의하는 틀로 성격이 바뀌지 않을까요.

▶후쿠야마 :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에 지명된 것으로 볼 때 북한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에 아주 큰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힐러리는 평소 북한·이란 등의 지도자와 직접 대화하는 건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오바마는 실용주의 노선을 걸을 것이므로 6자회담의 틀을 크게 변형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재오 : 제2차 세계대전 후 한반도의 운명은 주변 열강에 의해 결정됐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휴전회담 성립 과정에서도 한국의 주체적 의지보다는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더 많이 작용했습니다. 한국은 그런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남북문제 당사자인 한국의 뜻과 상관없이 6자회담의 성격이 변질되는 것을 우려합니다. 6자회담은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틀인 만큼 다른 용도로 쓰이는 건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후쿠야마 : 한국이 한국인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북핵 문제는 6자회담에서 다루는 게 옳습니다. 북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도 6자회담 틀 안에서 핵문제를 논의하길 원합니다. 앞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다자 간 협의체제나 포럼이 필요합니다. 북한의 앞날이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갑자기 붕괴할 경우 남북 통일과 관련해 중국이 찬성할지, 반대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 등을 다자가 논의하는 시스템은 갖춰놓아야 합니다.

▶이재오 :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한국에서 싹트고 있습니다. 한국의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길은 무엇입니까.

▶후쿠야마 : 특정 지역에서 한 나라만 강해질 경우 지역의 질서가 깨져 비극이 발생한 경우는 많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통일로 세력이 너무 강해졌기 때문에 발발한 겁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이 아시아에서 그런 비극을 재연하는 결과를 낳아선 안 되겠죠. 한국이 광복 이후 취한 정책은 상당히 합리적이었습니다. 교육을 통해 산업화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10∼20년의 기간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공교육뿐 아니라 이미 배출된 인재들을 재교육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세계가 아직까지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기술을 개발하는 노력도 지속해야 합니다.

▶이재오 : 한국은 내적·외적 경쟁력을 더욱 키워 한·중·일 3국이 정립하는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대규모 투자를 통해 경제 성장의 동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또 정치·교육·행정 제도의 과감한 개편을 통해 국내외적 신뢰를 증진해야 합니다. 국제사회에서 신용자본을 확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세 번째론 국가 발전의 비전을 제시하는 겁니다. 개개인의 꿈이 국가적으로 자산화할 수 있는 청사진과 구체적인 방안을 정치 지도층이 내놓아야 합니다. 북한의 체제에 급격한 변화가 생겼을 때 한국과 주변국이 공동 대처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후쿠야마 : 중국이 30년 전 그랬던 것처럼 북한이 개방의 길로 나온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북한 체제에 변화가 생긴다고 가정할 때 한국 등 주변 국가는 일단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북한은 무시 못할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위험한 국가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또 체제가 붕괴할 경우에는 한국과 주변국이 긴밀한 협력과 공조를 통해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한반도 통일문제와 관련해 주변국에선 오해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미리부터 토론하고 협의하는 시스템을 가동해야 합니다.

▶이재오 : 북한에 변화가 생길 경우 유념해야 할 건 세 가지라고 봅니다.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북한 사회를 안정시키고, 북한 경제를 재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때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은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 한국이 주체라는 사실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주변국이 자기 이해관계를 앞세워 분단과 갈등을 연속시키려 하면 안 됩니다. 주변국은 한민족의 역사적·영토적 정체성을 보장하면서 한반도에 평화 통일이 이뤄지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정리=이상일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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