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번역가 있어야 한국문학 큽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영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작품은 미국에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번역된 것들도 원본의 힘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구요.”

세계 각국의 시인·소설가들을 초청, 창작과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는 미국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International Writing Program·IWP)의 크리스토퍼 메릴(52·영문과 교수·사진) 원장이 부실한 한국 문학 번역 실태를 꼬집었다. 그리스 북부 아토스산의 20개 수도원을 순례한 경험을 기록한 자신의 저서 『숨은 신을 찾아서』(민음사) 출간에 맞춰 20일 열린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다. 1967년 시작된 IWP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 등 지금까지 120여 개국, 1200여 명의 작가를 연수시켰다. 메릴은 2000년부터 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200개 지역 방송국을 통해 미국 전역에 뉴스·음악을 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PRI’s The World’를 통해 한 달에 한 번씩 외국 문학을 소개하는 일도 한다. 때문에 미국 내 최고의 외국문학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메릴은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수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한국 영화와 음식이 특히 미국인들에게 인기라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한국문학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 원인에 대해 메릴은 “제대로 된 번역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이나 아랍권 작가들의 경우, 단 한 사람의 뛰어난 번역자의 활약 덕에 문학 작품들이 제대로 미국 시장에 소개됐고 인기를 얻었다”고 했다. 중국의 경우 미국인인 하워드 골드블랫이 쑤퉁·모옌 등의 작품을 대거 번역했다고 한다. 한 번 중국 문학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자 그 열기가 이어져 최근 중국 문학작품은 한 해 수십 편씩 미국에 번역·소개된다고 전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두 명을 배출한 그리스도 결국 한 명의 미국인 번역자가 활약한 결과라고 소개했다.

‘단 한 사람’의 능력 있는 번역자를 양성하는 방법에 대해 메릴은 “한국에 관심이 큰 미국인을 지원해 한국 문학 번역자로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의 젊은 학생들이 한국 문학을 접할 수 있도록 대학 등 교육기관을 통한 한국 문학 접촉 기회를 늘리는 방안도 병행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메릴은 “한국 문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내가 겪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그는 김영하 소설을 예로 들며 “재미 있어 미국 독자에게 잘 먹힐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여러 권이 번역될 경우 미국의 젊은층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지우의 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에너지를 담고 있어서”, 나희덕의 시는 “일상 생활의 세밀한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는 조용한 면이 있어서” 매력적이라고 했다.

메릴은 “한국 문학이 단기간에 노벨문학상을 받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번역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한 나라의 문학이 외국에서 인정받으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12일 서울에 온 메릴은 성균관대 영문과에서 진행하는 BK21 프로젝트에서 2주간 현대 미국시에 대해 강연한 뒤 24일 떠난다.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