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과 평생 싸워온 솔제니친, 검열관되어 출판사측과 마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검열과의 싸움에 평생을 바쳐온 작가가 자신의 사생활에 관한한 누구보다 가혹한 검열관이 되고 있다.” 현재 심장질환으로 입원치료중인 솔제니친(78.사진)은 나이로 보아 그의 생애 마지막 출판물이 될지 모를 자신의 전기를 둘러싸고 출판사측과 심한 마찰을 빚고 있다.문제의 진원은 영국의 세인트 마틴 출판사가 지난 1월 제작을 마친 솔제니친의 전기.이 책은 솔제니친의 정치적 역정에 초점을 두어온 기존의 전기들과는 달리 여태껏 공개되지 않은 그의 사생활을 밝히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솔제니친은 자신의 전기가 출간되는 것을 강력 저지하고 있다.

저자인 도널드 미첼은 영국 출신 작가로 지난 81년 사랑을 다룬 소설'화이트 호텔'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러시아 번역문학가이기도 한 미첼은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솔제니친의 첫번째 부인 나탈랴 레셰토브스카야를 직접 만나 수차례 대화를 나눴으며 그녀의 회고와 증언을 토대로 이 책을 완성했다.

“1936년 봄날 로스토브대학 교정에서 둘의 만남은 시작됐다. 장래가 촉망되는 22세의 화학도와 피아니스트.곧바로 그녀는 그를 집으로 초대했고 방에 남은 둘은 나란히 피아노 앞에 앉았다.그녀의 긴 손끝에서 울려퍼지는 쇼팽의 야상곡.'나타샤'를 그가 나직이 그녀를 불렀다.”

다분히 연애소설 같은 분위기로 시작되는 전기는 이어 신혼의 보금자리를 채 펴기도 전에 날아든 징집명령.2차대전.이별.체포.유배.노동수용소로 이어지며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한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인가를 실감나게 한다.폭력과 공포,음모와 배신만이 득실대는 수용소군도 국가에서 파멸돼가는 인간의 심리를 파헤친 작가의 솜씨도 돋보인다.

결혼한지 1년도 채 못돼 남편을 전선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아내에게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고통은 수용소 생활중 솔제니친에게 나타난 정신적 자학증세였다고 레셰토브스카야는 회고하고 있다.더구나 솔제니친은'아이나 기르는'평범한 결혼생활을 몹시 혐오했고 이로 인해 그녀의 마음 속에는 풀 수 없는 앙금이 쌓여갔다고 그녀는 고백하고 있다.결국 둘은 솔제니친이 아직 수용소에 갇혀있던 50년 이혼에 이른다.한편 그의 두번째 아내인 나탈리아 스베톨로바는 전에도 KGB와 공모해 솔제니친에 대한 음모를 꾀한 적이 있는 레셰토브스카야의 주장들이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러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국민들에게 반(半)성자 대우를 받고 있는 솔제니친으로서는'보통 사람'의 전기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게 일반적 시각이다. 최성애 문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