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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반환>中. 최대조직 홍콩시민연합회 지도자 굳은 의지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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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7면

“날이 추워져야 소나무의 절개를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홍콩 반환뒤 홍콩내 민주화운동가들의 장래가 어찌 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쓰투화(司徒華)입법국 의원의 답변은 간단명료하다.

“걱정하지 않는다는게 아니라 단지 두렵지 않다는 것이지요.” 입법국 의원으로서보다 홍콩내 최대 민주화운동조직인'애국민주운동을 지원하는 홍콩시민연합회(支聯會)'의 주석으로서 홍콩민주화의 살아있는 우상으로까지 일컬어지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는 단호함이 배어난다.

민주당의 마틴 리(李柱銘)주석이 정당활동과 외국방문활동등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라면 司주석은 올해 66세의 나이에도 아랑곳없이 직접 각종 시위등에 참여,행동하는 민주화운동 지도자로 유명하다.

즉 홍콩인들의 민주화 의지를 보듬고 있는 상징적 인물인 것이다.

1일에도 그는 지난 89년 천안문(天安門)사태 발생뒤 매년 실시해 온 6.4유혈사태 규탄행진을 홍콩에서 벌인다.홍콩섬 센트럴에서 시작,중국의 홍콩내 대표기구인 해피밸리의 신화통신 홍콩분사까지 약 5㎞를 행진하는 것이다.

4일 오후8시에는 홍콩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6.4사태 추모 촛불대회를 빅토리아공원에서 갖는다.“지난해 4만5천명이 참가했는데 올해 비만 오지 않는다면 훨씬 많은 홍콩인들이 모일 것입니다.” 천안문사태뒤 매년 빅토리아공원에서 추모 촛불대회를 개최했건만 올해는 친중(親中)단체가 이 기간에 빅토리아공원에서 축구대회를 개최하겠다고 주장해 한바탕 장소확보 다툼을 벌였던 터라 기대가 더욱 크다.

“내년에도 물론 추모 촛불대회를 홍콩특별행정구 당국에 신청할 예정입니다.거절당한다면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우리의 의견을 표명할 생각이지요.” 반환에도 아랑곳없이 민주화운동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주장이다.

지련회의 목표는 천안문사태 재평가,중국내 민주인사들의 석방,6.4사태 사망자 발생 책임추궁,중국의 공산당 일당독재 청산,민주중국 건설등 다섯가지다.

이같은 목표가 과연 달성될 수 있을까.“대만이 2.28사건의 진상을 재조명하는데 50년,한국이 5.18민주화운동을 재평가하는데 십수년 이상 걸리지 않았습니까.결국은 시간 문제지요.” 지련회의 목표에 회의를 표하자마자 司주석은 시간을 무기로 반격을 가한다.

“민주화는 세계적 추세입니다.중국도 이를 거역할 수 없지요.”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가 비난한 첫번째 홍콩인이 바로 그이며 천안문사태 직후에는 또다시 중국공산당이 당보를 통해 마틴 리와 함께 중국 전복을 노리는 위험인물 두사람중 한사람으로 분류했다.

평범한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던 그가 오늘날의 홍콩 민주투사로 변신한 것은 73년 탄생한 홍콩교사협회가 기폭제가 됐다.월급을 올리기 위해 조직된 교협은 그를 주석으로 선출했고 그는 투쟁에서 승리,월급 올리기에 성공했다.교협은 현재 조합원 6만여명을 거느린 홍콩 최대의 노조조직으로 성장했다.그는 이같은 교협을 발판으로 85년과 88년 직능별 입법국 의원에 선출됐고 91년과 95년 직선에서도 거푸 당선됐다.89년 천안문사태뒤 그가 막 구성된 지련회의 주석으로 선임된 것도 교협에서의 경험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司주석은 아직 미혼이다.

“반환뒤에는 외국에 나가지 않을 계획입니다.” 그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중국당국의 민주화운동가 처리방법은 대략 네가지가 있다.첫째가 중국.홍콩으로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는 것,둘째는 공해상으로 추방,셋째는 밤낮으로 감시,넷째는 감옥에 가두는 것이다.그가 외국 나가기를 꺼리는 것은 일단 한번 나가면 영원히 홍콩으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반환뒤 그의 운명은 바로 홍콩 민주화의 운명이다.세계가 그를 주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사진설명>

홍콩에서 매년 개최되는 6.4 천안문사태 기념 촛불대회의 95년 모습.올해는 반환을 앞둔 마지막 기념집회가 홍콩섬 빅토리아공원에서 성대하게 열릴 예정이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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