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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문단에 번지는 ‘질투·존경 바이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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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휴, 선생님도 참! 아휴, 선생님도!”

소설가 신경숙(46)씨는 박완서(78) 선생의 『친절한 복희씨』를 읽으며 신음처럼 토했다는 이 말을 또 연발했다. 신씨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아 김연수(39)씨의 『밤은 노래한다』를 추천한 박 선생의 글을 되뇌면서다.

박 선생은 본지의 신년기획 ‘작가가 뽑은 작가의 책’(이하 ‘작작책’) 두 번째 필자였다. 그의 글에서 다음 두 문장은 문인들 사이에서 특히 회자됐다. “나는 김연수라는 작가를 질투하며 한편 존경하며 이 소설을 읽었다. 내가 섣불리 집적거려 놓지 않기를 참 잘했다는 안도감도 숨기지 않겠다.”(본지 1월 12일자 21면)

박완서씨가 등단하던 1970년 김연수씨는 태어났다. 39년 연하의 후배 작가를 질투하고 존경한다니…. 김씨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제 작품에 대해 말씀하신 게 맞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병률(42) 시인은 “선생님께서 스스로를 낮춰 목소리를 내셨다는 것만으로도 한 대 맞은 느낌”이라 했다. 새파란 후배를 권위로 누르지 않고 기꺼이 받들어 모시는 문단의 거장 앞에서 어린 작가들이 고개 숙이지 않을 도리가 없을 터다.

박완서 선생의 속뜻은 이랬단다. “그냥, 정말 그렇게 칭찬해주고 싶어서 그랬어요. 요새 보기 드물게 열심히 쓴 것 같이 느껴졌어요. 요즘엔 너무 금세 금세 감각적으로 쓰는 게 많잖아요. 내가 그 작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젊은 작가를 키워주고 싶었어요.” 원로 작가의 칭찬은 ‘요즘 젊은 작가들 왜 그래?’란 나무람보다 더 묵직한 죽비소리였던 셈이다.

칭찬의 힘은 컸다. 한 주에 평균 1000부쯤 나가던 『밤은 노래한다』는 박 선생의 추천글이 실린 지 1주일이 채 안 돼 2050부가 팔렸다. ‘작작책’ 첫 번째 필자였던 신경숙씨가 5일 추천한 박 선생의 『친절한 복희씨』는 2주간 3100부가 움직였다. 스테디셀러이긴 했지만 ‘작작책’에 소개되기 직전엔 주간 평균 300~500부 정도 소화됐다.

신경숙씨, 박완서 선생, 김연수씨에게 원고를 받으며 “고생하셨다”는 말을 던지면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고생 안 했어요. 즐겁게 썼어요.” 이들의 들뜬 목소리에서 사랑하는 이에게 기꺼이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풋풋한 연인들의 설렘과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동료 작가의 작품을 보며 품는 감동, 은근한 질투가 동반된 존경…. 그런 ‘질투와 존경 바이러스’의 긍정적인 힘이 한국 문단은 물론 사회 곳곳으로 널리 퍼지길 희망한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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