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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헤지 펀드들 되레 손실 ‘눈덩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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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헤지 계약을 맺은 펀드가 사실상 원화 형태로 운용됐다면 헤지 미계약 펀드는 해외 통화로 투자한 셈이다. 지난해 원화가치가 달러·엔·위안 등 주요 통화에 대해 떨어지는 바람에 해외 통화 형태로 투자된 헤지 미계약 펀드의 환차익 효과는 컸다.

이는 동일한 운용사의 똑같은 펀드의 수익률을 환 헤지 여부에 따라 나눠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삼성투신운용의 ‘삼성 당신을 위한 N재팬주식 종류형자1_A’와 ‘삼성 당신을 위한 N재팬주식 종류형자2_A’에 편입된 주식 종목은 똑같다. 차이는 환 헤지 여부뿐이다. 결국 수익률 차이는 39%포인트나 벌어졌다. <표 참조>


문제는 해외 펀드가 대부분 헤지 계약을 맺는 바람에 해외 통화 강세에 따른 환차익을 못 본 것이다. 펀드평가사인 제로인이 평가 대상으로 삼은 설정액 100억원 이상 해외 펀드 280개 중 환헤지를 하지 않은 펀드는 60개에 불과했다. 금액(순자산 기준)으로 따져보면 헤지 미계약 펀드 비중은 16.6%에 불과하다. 쏠림 현상은 여기에서도 빚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펀드의 최대 판매 창구인 은행 탓이 크다. 대부분의 은행은 ‘환 헤지=안전’이란 전제에서 환 헤지 미계약 펀드에 대한 판매를 거부했다. 최상길 제로인 전무는 “환도 일종의 투자 대상인데, 일률적으로 환 헤지를 하라고 강요한 것은 펀드매니저의 재량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쏠림 현상으로 인한 피해는 곳곳에서 발생했다. 2007년 황금알을 낳던 거위였던 중국 펀드는 애물단지로 바뀌었다. 지난해 중국 펀드의 평균 손실률은 -55.2%. 2007년에 올린 수익(58.1%)을 고스란히 반납했다. 또 각광받던 브릭스 펀드도 손실 폭이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 지역보다 컸다. 지나친 이머징 마켓 편중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다. <표 참조>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타격을 받은 미국·유럽과 달리 자원이 많은 브라질과 러시아는 잘나갈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미국발 경기 침체로 원부자재 수요가 급감하면서 러시아·브라질 펀드는 속절없이 추락했다. 특히 러시아 증시의 추락이 심각했다. 국제 유가 하락에다가 옛소련 지역 국가와의 분쟁까지 겹치는 바람에 러시아 펀드의 평균 손실률은 -78.5%나 됐다. 1998년 러시아의 채무불이행 선언으로 러시아 채권 펀드가 휴지조각이 되던 때를 연상케 하는 수준이다. 2007년에만 평균 수익률 64%를 기록해 투자자를 사로잡았던 인도 펀드도 지난해엔 -55%로 주저앉았다.

그런데도 펀드의 대규모 자금 유출, 즉 ‘펀드 런’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변이라면 이변이랄 수 있는 일이다.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이 터질 때는 주가가 직전 고점에서 20~30% 하락하자 펀드 런이 발생했었다. 또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 펀드 수익률이 반 토막 이상 났지만 대규모 자금 유출은 없었다. 김후정 동양종금증권 펀드 애널리스트는 “IT 버블 붕괴 이후 2년 만에 원금을 회복한 경험이 펀드 런을 막았다”고 분석했다.

증권팀=이희성·조민근·한애란 기자
※우동헌(상명대 경제학과3) 인턴기자가 기사 작성을 도왔습니다.

자료 제공:제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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