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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로부대 44년만에 안장 - 6.25때 전사 3,719基 대전국립현충원 봉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들판에서 숨져간 전우들이 이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는지.” 6.25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켈로부대 유격대원 전원에 대한 국립묘지 위패봉안이 44년만에 마무리되자 최규봉(崔奎峯.75)씨등 이 부대 출신들은 전쟁터를 떠올리며 감회어리면서도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전쟁중 미극동사령부 주한미8군 연락사무소(KLO.8240부대)에 소속돼'켈로부대'로 불렸던 이들 유격부대는 북한군의 정보수집에서부터 후방교란.적 시설파괴.조종사 구출.아군 공격유도등 게릴라전을 이끌며 곳곳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맥아더사령관이 진두지휘한 인천상륙작전에서도 이들은 핵심역할을 수행했다.인천 관문 팔미도의 등대점령이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서북청년단 출신의 최규봉대장을 비롯,25명의 용사들은 50년 9월10일부터 5일간 사투끝에 등대를 탈환했다.

연합함대는 이들이 보낸 등대신호를 받고 상륙작전을 개시했다.

주로 북한지역 청년으로 구성,지역별로 활동한 켈로부대는 1.4후퇴를 전후해 4만명에 달했다.이중 1만2천명의 병력으로 강화.교동과 속초.주문진등에서 활약한'돈키부대'와'울프 팩'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미육군이 84년9월 공개한 2급 비밀문서엔 켈로부대가 휴전때까지 모두 4천4백45회에 달하는 전투를 벌여 적 7만여명을 섬멸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대신 유격대원 1만여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켈로부대는 휴전후 국방부 8250부대로 통합,7백53명이 장교로,1만2천여명이 사병으로 육군에 편입되면서 해체됐다.

전사자들은 그동안 여러 이유로 전사로 인정받지 못해 방치돼오다 95년 6월부터 세차례에 걸쳐 모두 3천7백19기의 위패가 대전국립묘지에 봉안됐다.

마지막 3백4명의 위패봉안식이 거행된 26일.대전 국립현충원 현충탑 앞에는 옛전우 2백여명이 참석,먼저 간 전우들의 넋을 위로했다. 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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