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덜 급한 실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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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모(41)씨는 지난주 중소 전자부품업체에 생산직으로 취업했다가 이틀 만에 그만뒀다. 서씨는 “선배랑 면접을 봤는데 나만 채용됐다. 연봉은 1500만원에다 정부 지원금을 합쳐 연간 2000여만원을 받기로 했는데 적은 편은 아니다. 선배는 친형과 다름 없다. 선배와 함께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퇴사했다.” 서씨는 석 달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뒤 노동청의 구직 알선을 처음 받아 취업했으나 이틀 만에 그만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2년째 직장을 찾고 있는 김모(28)씨는 지난주 초 서울 구로동에 있는 사무용 박스를 만드는 회사에 취업했다. 이씨는 “회사 위치가 별로 좋지 않고 건물 모양도 맘에 안 들었다. 회사 근처에 가면 영 정이 안 들어 출근하기 싫었다”고 말했다. 또 “물건을 납품하는 회사에 친구가 근무하고 있는데 내가 이 회사에 다니는 사실이 알려질까 걱정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일주일여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서울지방노동청에서 일자리를 알선해 줬지만 한 달도 안 돼 그만둔 사례들이다.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지방노동청 박종선 남부지청장은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줬는데 사나흘 만에 너무 쉽게 그만두는 실직자들이 예상외로 많다”면서 “일부 실업자들이 아직 덜 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지방노동청 남부지청에 구직을 의뢰한 실직자는 5228명. 이 중 25.4%만 취직에 성공했다. 나머지는 두 달이 안 돼 회사를 그만뒀다. 지난해 1~11월 전국 노동청의 평균 취업 성공률(28%)보다 낮다.

심모(39)씨는 “연봉(2000만원)이 적고 복지혜택이 적다”, 이모(50·여)씨는 “회사가 너무 멀다”는 이유로 2~3일 만에 출근하지 않았다.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이 아니라 영업직을 원한다”며 회사를 그만둔 경우도 있다.

구인난에 허덕이는 중소업체도 많다. 서울 강서구의 일진정공 김상민 사장은 “지난해 하반기 여섯 번에 걸쳐 10여 명의 직원을 채용했지만 모두 한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나갔다”고 했다. 김 사장은 “직원들이 그만두면서 외국인 근로자랑은 같이 일하기 싫다는 이유를 대더라”고 말했다.

16일 오후 서울 대치동 강남종합고용지원센터를 찾은 구직자들이 취업 상담을 하고 있다. 직업을 알선받은 구직자의 70% 이상이 두 달이 안 돼 그만둔다. [사진=최승식 기자]

서울지방노동청 신주열 강남지청장은 “전국에 9만여 개의 일자리가 있는데 구직자들이 조금만 눈높이를 낮추면 상당수가 직장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업률이 낮은 이유는 요즘 나오는 일자리가 금융 위기로 인해 질이 떨어진 측면도 있다. 또 정부의 일자리 알선 방식이 정교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노동연구원 황덕순 선임연구원은 “기업이나 정부가 구인 정보를 더욱 구체화한 뒤 구직자에게 개인별 맞춤 정보 등을 제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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