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출마 선언 최병렬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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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3일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출마를 선언한 최병렬(崔秉烈)의원의 별명은'최틀러'(나치 독일 독재자 히틀러를 빗댄 것)다.일단 결정하고 나면 앞만 보고 달리는 그의 저돌적인 성격에서 비롯된 별호다.

기존의 신한국당 대권 예비주자들과는 아주 다른 컬러의 주자인 셈이다.스스로도“나랏일을 제대로 해본 사람”으로 타주자와 색깔을 분리하고 있다.

성수대교 붕괴후 서울시장(94년 11월)으로 취임한 그는 복지안동(伏地眼動)에 젖어있는 시청공무원들을 제일 바쁜 공무원으로 만들었다.그는 8개월간 다리등 구조물만 고치러 다녀'안전시장'의 후한 평가를 받았다.

노동부장관(90~92년)시절엔“우리나라 임금체계가 잘못됐다”며 총액임금제를 밀고 나갔다.직전 공보처장관(90년)때는 KBS노조사태가 터졌다.사측에서 공권력 투입을 주저하자“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을 노조가 쫓아낼 수 있느냐”며 자신이 공권력 투입을 결정해 버렸다.그는 지리산 천왕봉 밑인 경남 산청의 산골에서 태어났다.공비토벌전의 와중에서 참혹한 시체들을 목격하며 자랐다.

부산고시절 육사를 가기 위해 이과(당시는 육사가 이과)를 택했으나 동기인 정구영(鄭銶永)전검찰총장의 유혹에 끌려 서울대 법대로 인생항로가 수정됐다.

대학3년때 한국일보 견습기자 시험에 합격,조선일보로 옮긴 뒤 특유의 기획.추진력을 인정받아 편집국장까지 올랐다.전두환(全斗煥)정권의 등장과 함께 전국구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나 노태우(盧泰愚)대통령만들기의 공신으로'5공청산'을 주도했다.지난 92년 대선때는 민자당의 기획위원장으로 사실상 선거를 총괄기획,두번째'킹 메이커'의 입지를 굳혔다.

-막바지로 경선가도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인가.“현 시국을 6.25이후 최대 위기상황으로 본다.외채는 1천억달러를 넘었고 국제수지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이 상황이 계속되면 나라가 망한다는게 숙고끝 판단이다.우리도 국가혁신이 시급하다.이 일은 풍부한 위기관리경험과 엄청난 추진력.소신을 갖추고 검증받은 사람이 나서야 한다.내가 그런 기준에서 쓰임새가 있다고 생각했다.” -여타 주자들은 적임자가 못된다는 얘기인가.“개인적으로는 모두 훌륭한 분들이다.그러나 불행히도 강도높은 국정경험과 업무추진 능력을 갖춘 주자는 없다.검증되지 않은 아마추어정치인,또는 애국심만 갖고 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현실적으로 당내경선을 통과할 가능성은 어려운게 아닌가.“상식적으로 내가 출마할 계제가 아니라고 보는게 옳다.정치현실의 냉혹함도 안다.그러나 정치권내 위기의식과 민심현장의 위기체감은 큰차이가 난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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