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헛소문 공포 - 자금난 루머에 주가폭락.부도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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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루머가 기업들을 뒤흔들고 있다.한보사태 이후 금융기관들이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는 가운데 금융및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일부 기업들에 대한 악성루머가 유포되는 바람에 부도위기에 몰리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부도방지협약이 발효된 지난달말부터 이같은 현상이 부쩍 심해지고 있다.21일의 경우 해태그룹등의 자금악화설이 갑자기 확산되면서 관련회사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빗발치는 문의전화로 회사업무가 마비될 정도의 소동을 겪었다.

증시주변에 퍼진 소문은 해태그룹이 영업부진으로 자금난이 심화돼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금명간 부도방지협약 적용을 신청할 것이라는 내용.그러나 해태측은 소문의 대상이 해태그룹이 아니라'상호가 비슷한 다른 회사'라는 내용의 공시를 내는 한편 소문을 퍼뜨린 유료주가 음성정보서비스회사인 대한 컴퓨터정보통신을 경찰에 고소했다.신원그룹 역시 자금난 소문이 퍼지면서 증시에 상장된 4개 계열사들의 주가가 21일 모두 하한가를 쳤다가 하루만에 강세로 돌아섰다.이와관련,신원그룹 박성철(朴成喆)회장은“창업이후 25년동안 한번도 적자를 낸 일이 없는데 이런 헛소문이 나도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2일에도 자금난 소문에 시달려온 뉴코아그룹이 1천6백억원의 긴급자금을 은행에 요청했다는 내용이 일부 언론에까지 보도돼 하루종일 업무가 마비될 정도의 소동을 겪었다.

이 그룹의 장광준(張光俊)전무는“하반기 경영계획에 필요한 자금을 제일.한일은행등에 요청한 것이지 당장 부도 막기위해 긴급자금을 신청한 것이 아니다”면서“이바람에 3천5백여 납품업체들은 물론 고객들마저 크게 위축돼 정말로 부도가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뉴코아는 지난 3월28일 하나은행으로부터 3백억원의 자금을 대출받은뒤 동화.제일.한일.서울은행및 LG종금등에 운전자금 지원을 요청해왔다.

뉴코아는 이에 앞서 지난 2월부터 부도루머가 돌면서 제2금융권의 자금회수 압력을 받아 모두 1천83억원을 상환했다.

이밖에도 진로에 이어 대농그룹이 부도방지협약 적용대상으로 선정된 이번주 들어서는 금융및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10개안팎의 그룹 명단이 자금난이 심한 그룹으로 지목돼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특히 부도방지협약이 일단 발동되면 대출금이 묶이게 되는 종금.신용금고등 2금융권 금융기관들이 지난해 경영실적이 나쁘거나 부채가 많은 거래기업들을 상대로 자금을 거둬들이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이런 소문도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종금사와 할부금융.신용금고등 2금융권 금융기관들은 부도방지협약 도입이후 총4조3천억원 가량의 대출금을 회수한 것으로 집계됐다.30개 종금사들의 대표적 대출방식인 기업어음(CP)할인잔액은 지난 3월말 85조2천8백억원에서 지난 19일에는 83조4천3백억원으로,팩토링 할인잔액도 같은 기간중 2조3천5백억원에서 1조9천억원으로 줄어드는등 총2조3천억원 가량이 줄어들었다.

또 주택할부금융을 비롯한 20개 할부금융사의 팩토링 할인잔액도 지난달말 1조9천3백억원으로 지난해말에 비해 1조원이상 줄어들었다.신용금고의 경우 4월말 현재 전국 2백36개 금고의 어음할인규모가 8조4천9백억원으로 역시 지난해말에 비해 3천3백억원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 박철(朴哲)자금부장은 “이달들어 시장금리가 12%대로 안정되면서 금융시장이 한보.삼미부도사태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면서“금융기관들이 기업들의 자금사정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속사정도 이해는 가지만 정확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루머들이 나돌아 시장이나 기업에 충격을 주는 상황은 어떻게든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래.남윤호.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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