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학자는 연구업적으로 평가받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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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6시30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이이화(67) 선생의 『한국사 이야기』(전22권·한길사) 출판기념회가 열렸습니다. 이 선생이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는 역사문제연구소·동학농민혁명단체협의회 등 학술단체 회원과 이 선생이 사는 구리시 아치울의 마을사람 등 600여명이 모여 역사학자로서 어쩌면 ‘마지막’ 꿈이었을지도 모르는 통사의 발간을 따뜻하게 축하해줬습니다. 이 사회의 내로라하는 인물도 많이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재야’사학자의 출판기념회라는 인상을 지우기는 어려웠답니다. 하객 중에 ‘정통’역사학계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겠지요. 학자에게 소중한 것은 뭘까 생각해 보게 하는 자리였습니다.

1976년에 밀턴 프리드먼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이 상을 선생님 커리어의 정점으로 여기십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스웨덴 사람 7명이 이 순간 나의 연구결과에 대해 내놓는 평가보다는 앞으로 50년 뒤 동료 경제학자들이 나의 연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나에게는 더 중요합니다”라고요. 혹여 우리 학계가 선생의 업적을 몰라준들 어떻습니까.

이제 우리도 학자는 연구성과로만 판단해야겠습니다. 애덤 스미스(1723∼1790)와 데이비드 리카르도(1772~1823)를 경제학자로 기억하지 않는 사람 있습니까. 이들은 정규 경제학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도 세계 경제학사에 우뚝 섰습니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지 않아 ‘재야’라는 표현에서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선생의 뒤에는 일반 독자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한국사 이야기』의 주문량이 하루에 100질이나 되고, 대학생과 일반인들의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지요. 아마도 올 여름 무더위를 식혀줄 책으로 『한국사 이야기』를 꼽고 있을 독자도 많을 것입니다.

정명진 기자 Book Review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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