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에서 만난 장 뤽 고다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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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올 칸영화제에서는 60년대 프랑스영화의 누벨 바그(새 물결)운동의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감독이었던 장 뤽 고다르(67.사진)가 참석해 칸을 찾은 영화관객들로부터 열정적인 환영을 받았다.

여전히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면서도 좀처럼 대중앞에 나서기를 꺼려온 고다르는 올 칸영화제'주목할만한 시선'부문에 비디오로 찍은'영화사(映畵史)'(원제 Histoire(s)du Cinema)가 초청 상영됐으며 매우 드물게 기자회견,관객과의 만남 행사도 가졌다.프랑스 고몽영화사가 제작하는'영화사'는 그가 9년 전부터 준비해온 비디오 시리즈.7편까지 예정돼 현재 진행중이며 이번 영화제에선 3,4편이 상영됐다.

고다르는'영화사'를 제작하게 된 배경을“20여년전 몬트리올에서 영화사 강의를 하게 되면서 나름대로 영화의 역사를 설명하려다보니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또 영화사를 풀어가는 자신의 관점에 대해“영화의 흐름을 사회의 변천사와 비교하면서 나 자신의 개인사도 개입시킨 주관적인 작품”이라면서“예술성과 자본의 문제,그리고 세상의 비참함등 요소들을 축으로 영화를 통해 인식되는 20세기를 다루려 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사'는 여러가지 인용문과 회화작품,그리고 영화사에서 중요한 영화장면들을 몽타주기법으로 편집하면서 고다르 자신의 목소리로 강의하듯 해설해간다.3편에선'영화란 무엇인가''아무 것도 아니다''영화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인용문과 함께 1.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이라든지,프랑스내 불법체류자 문제등의 비참한 사회문제와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을 연결시킨다.4편은 앨프리드 히치콕에게 바쳐졌는데 그는“나의 의견으로 히치콕은 당대의 약 5년간 진정한 우주의 지배자였다.

그는 히틀러.나폴레옹보다 훨씬 더 확실히 대중을 장악하고 있었다.히치콕은 시인이므로 당시 대중은 시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셈이다.그는 대중적인 시인이었다”고 설명했다.

고다르는'영화사'에서 특히'영화란 무엇인가'라는 현재적인 관점보다'영화가 무엇이었나'를 되돌아보는 미래적 관점에서 20세기의 영화를 정리하고자 시도한다.그는 영화예술이 끝났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영화는 끝났다.우리는 회화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대답하면서도“나는 영화의 종말을 낙관적으로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는'영화사'를 필름이 아닌 비디오로 찍었는데“내가 생각할 때 비디오는 영화의 무덤이자 20세기 영화사의 무덤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그 자신 비디오로 작품을 만든 것은“이미지가 필름보다 좋지는 않지만 만들기가 매우 쉽고 무엇보다 음악 저작료가 없어 영화보다 훨씬 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이처럼 비디오는 그 편의성 때문에 영화를 모든 사람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 는“1900년대의 영화는 종말에 다다르고 있다.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영화는 마치 과거의 무성영화와 같다.테크놀로지의 발달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영화는 예술적으로는 후퇴했다.이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새롭게 등장한 현재의 시기도 마찬가지다.

예술적으로 영화가 후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20세기와는 다른 영화,현재로선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영화예술이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영화제의 개막 초청작인 뤽 베송감독의'제5원소'가 프랑스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기록하는등 제작비가 천문학적으로 돼가는 추세에 대해선“영화가 장사의 속성을 지녔다는 점을 부정하지도 않고 나쁘게 보지도 않는다.사실 뤼미에르형제가 처음 영화를 상영한 것은 기계를 가지고 돈을 벌어보자는 취지에서였지 않았는가.따라서 영화는 시작에서부터 상업성을 지니고 있었다.하지만 요즘의 상황을 보면 세계적으로 영화를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합친다면 아마도 영화가 벌어들이는 액수를 훨씬 능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흐름을 보면 영화가 길어지고 제작비도 자꾸 많아지는 추세를 보였는데 그렇게 영화의 규모가 커지면서 예술적인 성공의 가치기준도 달라졌다.

아무튼 그렇게 돈을 들였으니 영화가 상업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면서도“그러나 좋은 영화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노익장(老益壯)! 고다르. 칸=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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