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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복에서도 ‘크로커다일 신화’ 재현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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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24면

‘아날도 바시니’의 모델인 배용준씨 사진 앞에 선 최병오 회장.

지난 연말 일주일간 전국을 누비는 강행군을 해서일까. 6일 만난 최병오(56) 형지어패럴 회장은 피곤한 표정이었다. 부르튼 입술을 가리키며 사진기자에게 “입술을 가려서 촬영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밝고 또렷했다. “전국을 돌면서 700여 명의 대리점주를 만났어요. 몸은 고단했지만 자신감을 얻어 왔습니다. 실적도 만족스럽습니다.”

남성 캐주얼 출사표 최병오 형지어패럴 회장

그러더니 그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5201억원’이라고 적힌 A4 용지 한 장짜리 가결산서를 꺼냈다. 크로커다일·클레몽뜨·샤트렌 등 5개 브랜드를 합쳐 형지어패럴은 지난해 매출 5000억원(소매 판매가 기준)을 넘겼다. 크로커다일 브랜드 매출만 3019억원이었다. 최 회장은 “하반기 들어 의류 시장이 크게 위축됐지만 형지는 20%대 성장을 했다”며 “다양한 상품 구성과 부담 없는 가격, 900개가 넘는 촘촘한 유통망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1993년 11월 최병오 회장 이름으로 발행한 부도 어음. 이듬해 재기에 성공한 그는 이 부도 어음을 가장 소중한 ‘경영 자산’으로 간직하고 있다.

“경기가 안 좋아지면 고객들은 지갑 열기를 꺼리기 마련이지요. 티셔츠도 세 벌 살 것을 한 벌로 줄입니다.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불황 때는 또 다른 트렌드가 나타납니다. 바로 좋아하는 브랜드를 더 자주 찾는 ‘쏠림’ 현상이지요. 이것이 주목해야 할 기회입니다.”

최 회장에겐 외환위기가 그랬다. 1996년 그가 내놓은 여성 의류 브랜드 크로커다일은 공격적 출점으로 여성의류 시장을 평정했다. 서울보다는 지방, 특급 상권보다는 변두리 지역과 아파트 상가를 공략하는 우회 전략이 주효한 것이다. 지금은 롯데·현대·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에도 진출해 있다. 이런 이력 덕분에 그는 ‘역발상 마케팅의 달인’으로 불린다.

형지는 다음달 이탈리아 남성 캐주얼 브랜드 ‘아날도 바시니’를 출시한다. 한류 스타 배용준을 모델로 기용해 업계에선 진작 화제가 됐다. “아날도 바시니는 동생(최병구 아마넥스 대표)이 라이선스 계약을 해 들여온 겁니다. 마침 남성 캐주얼 브랜드를 준비하던 차에 동생이 적극 추천하더군요. 과감한 투자로 ‘악어(크로커다일) 신화’를 ‘바시니’로 이어간다는 각오입니다.”

여성의류와는 성격이 다른 남성 캐주얼 시장에 진출하면서 최 회장이 이렇게 자신감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 회장은 무엇보다 정장을 대신해 캐주얼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합리적인 가격대 브랜드가 인기를 끌 것이란 게 그의 판단이다. 특유의 색깔 마케팅도 최 회장이 ‘장기’로 내세운다. 크로커다일은 핑크·연두·바이올렛 같은 파스텔 톤의 색(色)을 써서 30대부터 50대까지 여성층을 사로잡았다. 바시니에도 이런 화사한 색깔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최 회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 남성의류 사업을 하다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다. 당시의 아픈 기억이 지금 와서는 값진 레슨이 됐다. 최 회장은 “남성복은 특히 부드럽고 편안한 착용감이 중요하다. 이를 결정하는 것이 어깨 라인”이라며 “바시니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최고의 패턴 전문가부터 영입했다”고 소개했다.

최 회장은 “새 브랜드 론칭을 포함해 올해 300억원대 투자를 할 것이다. 기회가 되면 이와 별도로 의류업체 인수합병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지난해 가을부터 자금 결제를 전자어음에서 현금으로 바꿨어요. 이렇게 하면 협력업체도 좋지만 저희도 이익입니다. 형지가 연 3000억원어치를 구매하는데 현금 결제를 통해 최대 250억원은 아낄 수 있거든요. 이것이 곧바로 가격 경쟁력으로 바뀝니다. ‘더 싸게 파는 재주’는 타고난 거 같아요.”

이 대목에서 최 회장은 “구매 예산의 40%는 비워 놓았다”고 강조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곧바로 생산에 들어가는 QR(즉시반응) 시스템을 갖췄다는 얘기다. 인기 제품 판매율을 높이면서 재고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포석이다. 그는 “고객 반응을 보면서 보름마다 신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역설적이지만 이것도 역시 불황이 주는 기회입니다. 경기가 좋으면 공장 잡기가 쉽지 않지요. 그러나 지금은 얼마든지 가능해요.”

그래도 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투자를 늘리다가 회사가 어려워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최 회장은 책상 서랍에서 색 바랜 봉투를 꺼냈다. ‘1993년 11월 18일 발행인 최병오’라고 적힌 부도 어음이었다. 부산 출신으로 82년 상경한 그는 동대문시장에서 ‘크라운사’라는 이름으로 의류사업을 크게 벌였다. 그러나 어음 관리를 허술하게 해 93년 11월 부도를 내고 만다. 재무 안정성을 묻는 질문에 최 회장은 “이듬해 남평화시장에 한 평짜리 매장을 얻어 새로 시작해 이때부터 10년 가까이 예금만 하고 살았다. 다시는 부도를 내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부도 어음을 가장 가까운 곳에 ‘모셔 두고’ 일한다”고 대답했다.

“지금까지 해외 출장을 가면서 비즈니스 좌석을 이용한 게 딱 두 번입니다. 두 번 모두 거래처 대표와 함께 가니까 어쩔 수 없이 동석한 거예요. 얼마나 속이 쓰리던지…. 아낄 수 있는 것은 무조건 아끼고 삽니다. 곳간이 비었는데 투자 늘리겠다는 말을 할 수 있나요? 연말께 1000억원 더 늘어난 매출로 증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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