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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브로커 제약 받더라도, 종기는 과감히 도려내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6호 11면

“창피하죠. 누워서 침 뱉기란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도려낼 것은 도려내야 합니다.”

쏟아진 탈북 브로커들의 고백

9일 탈북자 브로커로 10년 가까이 일해 왔다는 두 사람을 만났다. 숱한 고생을 한 사람들이었다. 4일 중앙SUNDAY 11면에 실린 ‘한국인 탈북자, 10대 소녀 성폭행 파문’ 기사를 읽고 고민 끝에 기자를 찾았다고 했다. 그들은 ‘고해성 토로’를 했다. 돈의 사슬에 묶인 탈북자의 남한행, 인권보호란 명분 아래 자행되는 인권 유린의 실례들을 설명했다.

한 여성이 절박한 상황에서 ‘돈과 몸’을 주고도 국경 지대에서 버림받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한에 정착해 있는 어머니에게 “돈을 안 보내면 데리고 있는 아이들을 도로 북한으로 보내 버리겠다”고 협박한 브로커의 얘기도 했다. “탈북자 문제는 대한민국 통일사에 남을 이슈입니다. 이대로 두면 끝내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속한 세계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유를 그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 고백들이 힘든 곳에서 묵묵히 탈북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많은 종교인들과 선량한 브로커들의 활동을 제약할 수도 있겠지만 종기는 도려내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는 4일 동남아 루트에서 벌어진 탈북 브로커 A씨의 비행을 기사화했다. 피해자 B양을 만나고 돌아온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의 말을 빌렸다. 극한 상황에 처한 탈북 여성의 처지를 이용한 성적 유린이 보도된 뒤 파장은 컸다. 국내 언론과 미국의 소리 방송(VOA)은 이 사건을 소개했고 향후 탈북자 브로커의 범법 행위를 강경하게 대처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도 전했다. 인터넷에도 오른 이 기사에 붙은 댓글과는 별도로 많은 e-메일도 기자에게 쏟아졌다.

솔직히 혼란스러웠다. B양을 A씨 집에서 한국 대사관으로 데려다 준 사람을 잘 안다는 이는 “A씨에 대한 소송을 준비 중이었는데 너무 일찍 기사화돼 당혹스럽다”고 했다. 다른 탈북자 지원 단체의 인사는 “B양을 통해 돈을 더 벌려는 조선족 브로커가 A씨를 음해하고 있다”며 “B양의 진술에만 의존해 A씨를 일방적으로 매도한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e-메일들 속에는 해외에 근거를 둔 탈북자 지원 단체와 브로커들의 연결 고리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신도들의 성금을 모아 현지 활동가를 지원해온 종교계 구호단체들의 반응은 예민했다. 혹시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여성 탈북자는 “정말 고마운 분들도 있지만 상처를 준 이들도 있다”며 “이번 사건의 진실은 모르겠지만,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탈북 여성들과 그들의 목숨 줄을 쥔 브로커 사이의 분위기는 서울 길거리에서 만난 선남선녀 사이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추행 문제가 ‘공개된 비밀’이었다며 종교를 팔고, 탈북자 인권을 팔면서 비행을 저지르는 브로커들을 끝까지 추적해 달라는 전화도 있었다. 한 지도층 인사는 “중앙SUNDAY가 탈북자 이슈를 심층 보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남한에 정착해 있는 한 여성의 글이 마음에 남았다. “딸 아이를 북에서 데려와야겠는데, 걱정된다.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용. 탈북자 브로커 비리 문제를 계속 추적하라는, 목숨을 걸고 남한에 왔지만 또다시 생존을 위해 힘들게 싸워야 하는 탈북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글로 써달라는 절절한 호소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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