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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마지막 길에서 또렷이 외워지던 法文 375자, 그래서 더욱 슬펐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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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03면

삶은 다면체입니다. 각기 다른 모양이 서로 이어져 ‘나’를 이루고 있지요. 27년을 검찰에서 봉직한 송종의(68) 전 법제처장의 경우는 어떨까요. 그는 ‘밤나무 검사’로 유명합니다. 월남전 참전 시 본국 출장길에서 헐벗은 산야에 충격을 받고 1973년부터 충남 논산 양촌면에 밤나무를 심어 왔습니다. 공직에서 은퇴한 지금은 이곳에 집을 짓고 살면서 밤과 딸기 가공 등 영농사업에 열심입니다.

울림과 떨림 -한 주를 시작하는 작은 말

또 산을 좋아해 서울대 법대 산악반 동호회 모임인 ‘한오름’을 내 몸처럼 생각합니다. 옛 선인들의 시를 자주 읽고 또 직접 지어보는 풍류남아이자, 부처님의 가르침을 늘 생각하고 실천하는 ‘천목거사 원종’이기도 합니다.

자연인 송종의가 담담한 필치로 적어낸 『밤나무 검사가 딸에게 쓴 인생연가』는 “왜 우리 아빠는 저 아빠처럼 다정하게 놀아 주지 않지”라며 눈물을 떨어뜨리던 어린 딸에게 30여 년 만에 보내는 반성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전쟁을 치른 뒤 하루하루를 그저 소처럼 일하며 생존해온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이 자식과 손자·손녀에게 슬쩍 보여주고 싶은 손때 묻은 일기장이기도 합니다.

특히 97년 교통사고로 잃은 외아들을 향한 애절함은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아들의 사십구재에 부쳐 지은 ‘고유문(告由文)’은 절절한 명문으로 법조계에 회자됐지요. 자식을 가슴에 묻는 아비의 마음을 그는 이렇게 전합니다. “…아들이 화장장으로 가는 마지막 길에 무상게(無常偈)를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워 들려주었다. 무슨 일인지, 그 와중에도 375자나 되는 그 경전이 정말 또렷하게 잘 외어졌다. 그게 더욱 슬펐다. 그래서 정말 크게 울고 말았다.(본문 33쪽)”

하지만 그는 아들의 죽음에서 삶을 봅니다. 부자지간의 연으로 자신에게 ‘인생’을 알게 해준 아들, 이 또한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이자 하루하루 더 소중하게 살아가라는 부처님의 뜻이 아니겠느냐면서요. 송종의 다면체에서 그의 아들은 가장 크고 반짝이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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