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활문화는 왜 하향 평준화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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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15면

우리는 과거에 비해 생활수준이 높아졌다고 믿는다. 그 믿음, 대부분 옳다. 그러나 일면, 그르기도 하다. 우리는 생활의 편리함을 얻는 대신 생활수준을 내놓는 계약을 했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생활수준이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된장독·간장독·고추장독이 있었다. 그 안에는 대대로 내려온 집안 고유의 ‘레시피’로 정성껏, 그리고 과학적으로 만든 장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장을 직접 만들지 않고 사서 먹는 경우가 더 많다. 이것은 명백한 음식 문화의 하향 평준화다. 모든 국민이 똑같은 맛의 ‘인스턴트 소스’를 먹고 있는 나라에서 수준 높고 다양한 음식 문화가 꽃필 수 있을까?

요즘 가요, 수준이 의심스럽다. 기계가 도와줄 수 있는 사운드의 만듦새는 분명히 좋아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창작 의지와 정서, 그리고 음악성은 되레 후퇴한 것 같다. 2000년대 이전 모든 가요에 면죄부를 주는 건 아니지만 요즘엔 가슴에서 우러나온 노래보다 머리로 쥐어짜 만든 것 같은 노래가 더 많이 들린다. 음악인의 자존심을 버린 자극적 노래도 더 늘었고, 노래는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믿는 가수도 많아졌다.

이런 마음으로 만들어진 노래는 압축 과정에서 음질이 크게 손상되는 MP3 파일로 저장돼 MP3 플레이어나 이어폰 같은 값싼 디지털 음향기기로 재생된다. 이 또한 디지털이 가져온 민주화이자 수준의 후퇴다. ‘별표 전축’의 바늘이 1분에 45회전하면서 레코드의 골 사이에 담긴 정보를 하나하나 읽어 나가며 음악을 들려주고 그것을 ‘감상’하던 시대에 비하면 디지털로 음악을 ‘소비’하는 이 시대의 음악 듣기는 진지함이 떨어진다.

우리는 예전보다 유명 브랜드 옷을 많이 입는다. 그렇게 신성시되던 루이뷔통은 이제 조금만 무리하면 걸칠 수 있는 입문용 명품이 되었다. 하지만 맞춤복 문화는 후퇴하다 못해 이제 전멸 직전이다. 유명 브랜드의 기성복을 입고 자랑하는 건 아직 진짜 멋쟁이가 아니라는 얘기다. 진짜 멋쟁이는 브랜드를 추종하는 대신 ‘동네 양복점’에서 양복을 맞추더라도 내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게 중요하다는걸 아는 사람이다.

뭐니 뭐니 해도 주거 문화만큼 수준이 후퇴할 수는 없다. 한옥이나 단독주택을 무조건 예찬하는 건 아니지만 다양한 생활의 풍경을 거세한 ‘아파트’라는 이름의 닭장에 온 국민이 목매는 우리 현실은 거의 비극이다. 소득이 많아지면 생활수준도 높아진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편리함의 유혹 때문에 오히려 생활의 본질과 정수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현직 남성 잡지 기자인 송원석씨는 ‘신사, 좀 노는 오빠, 그냥 남자’를 구분 짓게 하는 ‘매너’의 정체를 파악, 효과적인 정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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