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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지도자의 ‘묻지마 확신’ 전쟁 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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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국가사회당 당수로 지명된뒤 축하받고 있다. 히틀러는 준비없이 시작한 소련침공에 발목이 잡혀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중앙포토]

전쟁의 탄생
존 G 스토신저 지음, 임윤갑 옮김
플래닛미디어, 592쪽, 2만5000원

1941년 6월 히틀러가 소련 침공을 명령했을 때 그는 눈먼 확신에 빠져있었다. 여름 이전에 소련을 해치울 수 있다고 100% 자신했다. 그래서 병사들에게 줄 겨울 피복을 아예 준비하지 않았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독일 군대는 소련의 눈보라 속에서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 한국전쟁에서 맞붙은 김일성과 트루먼·맥아더도 그런 ‘묻지마 확신’을 공유했다.

김일성은 2개월이면 ‘민족해방’이 가능하다고 믿고 진격을 명했다. 트루먼·맥아더의 오판도 그에 못지않았다. 평양 점령을 앞두고 중공군 개입은 없다고 굳게 믿었다. 온갖 정보도 아예 무시했다. 1950년 말 중공군의 무시무시한 전면 기습은 그 맹신이 깨진 것인데, 그럼에도 “계속 북진!”을 결정했다.

중공군은 소규모(4만명)에 시골뜨기 군대 수준이라고 깔봤던 것이다. 실제 중공군은 20만이었고, 훌륭한 전투력에 전술까지 갖췄다. 미군의 맹신과 자만을 예견했던 사령관 팽더화이(彭德懷)는 함정에 들어온 미군을 마음껏 유린했지만, 그것은 중공군의 승리가 아니라 미군의 패배였다.

“맥아더는 진실과 사실 보다는 희망과 두려움에 의해서 행동했다. 중국 개입을 야기함으로써 맥아더는 전쟁을 2년 반 연장했고 한국전쟁을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남게 했다.”(135쪽)

이 책은 전쟁의 무시무시한 심연을 들여다본 작업이다. 1차 세계대전·한국전쟁에서 베트남전쟁·이라크 전쟁에 이르는 20세기 주요 전쟁의 맥을 차례로 짚어본다. ‘집단 광기의 발현’인 전쟁은 왜 일어날까, 전쟁의 문턱을 넘어설 때 정치지도자들의 ‘진실의 순간’, 즉 진짜 속마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리고 이런 재앙이란 피할 수가 있는 것일까?

지은이에 따르면 전쟁에서 이념(자본주의·공산주의)· 문명(서구·비서구)이나 경제적 요인 보다는 지도자의 성격이 평화 유지와 전쟁 발발에 결정적이다. 히틀러·트루먼·맥아더·김일성의 묻지마 확신이 그 어떤 다른 전쟁요인보다 컸다는 게 이 책의 분석이다. “이들은 단기 결전에서 승리한 뒤 자신만만한 완전 승리를 갈망”(516쪽)하는데, 그게 전쟁 선언을 내릴 때 지도자들이 보이는 ‘진실의 순간’이다.

딱딱하지도, 만만하지도 않은 이 책의 결론이 재미있다. 20세기에 전쟁을 일으켰던 나라는 그 어떤 나라도 승리하지 못했다. 1차 대전을 일으킨 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이 그랬고, 김일성이 그랬다. 그러면 앞으로 전쟁은 없을까? 그건 아니다. 19세기에 전쟁을 일으켰던 나라 거의 대부분이 승리했다. 제한된 목표를 염두에 두고 일으킨 현명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어느 쪽에서 교훈을 얻을 것인가? 인류는 지금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아주 느리게 배우고 있는 중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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