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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가는간이역> 24.삼척시 심포리역 (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승용차가 접근하지 못하는 역.그곳에서 근무하는 역무원들은“사람이 그립다”고 말한다.높은 산중턱에 있어 봄이 평지보다 10여일 늦게 찾아온다.

산과 들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개나리.진달래도 이제야 고개를 숙이고 뒤를 이은 싸리꽃이 봄의 교향악을 하얗게 연주한다.

온통 푸른 색에 둘러싸인 심포리역(강원도삼척시도계읍심포리).한때 잡상인들로 북적거리던 이곳이 이젠 한적한 간이역으로 변했다.통리역과 연결되는 하루 4편의 비둘기호가 밖의 세계와 연결시켜 주는 유일한 통로. 역사(驛舍)에서 태백~삼척을 잇는 국도 38번과 만나는 곳까지는 10분거리.철길을 걷다보면 잠시나마 어릴적 향수에 젖게 된다.역사뒤로 내려다보이는 계곡은 미인폭포로 이어진다.

미인폭포의 양옆으로 펼쳐진 절벽은 한반도 지질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지질학도들이 자주 찾는다.

심포리역은 열차의 독특한 운행방법으로 국내 철도사의 한장을 장식했다.무연탄등 이 지역 특산물을 싣고 심포리역에 도착한 화차는 통리역(강원도태백시)까지 경사가 급해 인클라인(경사진 곳에 레일을 깔고 전기모터로 열차를 끌어올리는 일종의 케이블 카)방식으로 운행됐다.

영동선중 통리역(7백70)과 아래쪽 심포리역은 직선거리로 1.1㎞.이 구간은 워낙 경사가 심해 증기기관차의 힘으로는 통행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인클라인방식으로 화차를 움직였던 것.인클라인 방식을 위해선 역과 역사이에 2개의 선로를 만들어야 했다.

통리역을 중심으로 각 선로에 있는 화차를 로프로 연결한다.이때 심포리역에 있는 화차는 통리역의 화차보다 무게가 가벼워야한다.통리역에 설치한 6백마력짜리의 모터가 작동하면 화차가 내려가게 되며 그 힘으로 심포리역에 있던 화차가 올라온다.

그러나 객차는 너무 무거워 이 방식으로 끌어올리지 못했다.때문에 강릉에서 심포리까지 열차를 타고온 승객들은 심포리역에서 하차한 후 통리역까지 걸어올라가 열차를 바꿔타야 했다.

이 지역 출신으로 29년간 역무원생활을 해온 홍성태(57.강원도삼척시도계읍심포리)씨는“60년대 통리역으로 오르는 길목엔 가게와 냉차집이 번창했고 승객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야바위꾼들도 몰려들어 무법천지였다”고 회상한다.

그런가 하면 40~50명이나 되는 지게꾼들은 승객의 짐을 옮겨주는 지게질로 생업을 잇기도 했다.운임은 20㎏정도의 짐을 올려주는데 4백~5백원으로 적지않은 돈이었다.

39년부터 사용됐던 인클라인시설은 지난 69년 터널개통과 함께 사라졌다.지금의 철로길이는 7.7㎞.그 사이에 완만한 경사의 터널 12개가 뚫려있어 디젤기관차가 힘겹게 오르내린다.

홍씨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길이가 가장 긴 산골터널(1천1백)에서 기관차는 과열된 엔진을 식히기 위해 정차했지요.기관차 꽁무니에 붙은 객차는 연기가 가득한 터널안에 20분정도 갇히게 돼 승객들의 고생은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지난 70년대 이 지역을 운행하던 영동선 열차는 화차 뒤에 3~4량의 객차를 달고 다녔다.힘에 부친 기관차는 터널을 지나면서 엔진을 식히기 위해 쉬었다.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달리는 영동선도 곧 환갑을 맞게 된다.심포리역에서 통리역 방향으로 2백여 걸으면 멀리 통리재가 보인다.영동과 영서를 연결해주던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통리재.열차의 기적소리는 세월의 강을 건너 가까이 다가온다. 도계=김세준 기자

<사진설명>

오는 23일 개관하는 태백의 석탄박물관은 동양 최고의 석탄박물관이다.사전 설명회에 참가한 관계자들이 전시된 삼엽충화석을 관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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