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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원로 펑전 사망 - 지도부, 막후 조정役 사라져 어려움 예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덩샤오핑(鄧小平)사후 중국의 최고 원로였던 펑전(彭眞.사진)전전국인민대표대회상무위원장이 26일 오후11시40분 노환으로 사망했다.95세.彭은 개혁.개방을 주장한 鄧의 남순(南巡)강화를 지지했으나 후야오방(胡耀邦)과 자오쯔양(趙紫陽)을 맹렬히 비판,실각시킨 보수파의 대부. 이번 彭의 사망으로 중국에는 이제 지난 86년말 노동지생활회에 참가,후야오방의 실각을 주도했던 첫번째 8대원로들중 양상쿤(楊尙昆.90)과 보이보(薄一波.89)등 단 두명만 남게 됐다.

리셴녠(李先念)과 덩잉차오(鄧穎超)가 92년에,왕전(王震)이 93년,천윈(陳雲)이 95년,鄧과 彭이 올해 각각 사망한 것이다.이들중 彭은 덩잉차오.천윈등과 함께 군부기반이 없는 전통적인 당 관료출신이었다.

또 96년1월 중국공산당이 공식적으로 정한'8老(또는 新8老)'중에서도 서열 1~3위가 모두 사망,5명만 남았고 이중 양상쿤이 최고원로 대접을 받게됐다.

중국에 공산당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공산당 정치국위원에 올랐던 彭은 류사오지(劉少奇)와 지난 20년대 후반부터 깊은 동지적 관계를 맺었으며 37년 옌안(延安) 지하공작 때부터 본명인 푸마오공(傅懋恭)대신 펑전이란 이름을 써왔다.

彭은 문화혁명 당시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덩샤오핑등과 함께 류사오지 사람으로 분류돼 큰 고초를 겪었다.

당시 15년 동안이나 베이징(北京)시위서기.시장을 역임했던 彭은“베이징에 침(針)도 물(水)도 들어가지 않는 독립왕국을 건설했다”는 비난속에 홍위병들에 의해 세차례나 공개재판으로 내몰렸었다.

79년초 복권된 彭은 80년 헌법개정위원회 부주임을 맡으면서 헌법개정을 주도했고 83년엔 치안과 비밀공작을 담당하는 중앙정법위 서기를 담당,88년 현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입법과 비밀조직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같은 彭의 사망으로 鄧사후 장쩌민(江澤民)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과도기 집단지도체제 안에서 막후 조정역할을 담당해줄 원로가 사라져 현 중국 지도부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鄧의 장례위원 4백59인의 명단중 彭이 江주석과 리펑(李鵬)총리.차오스(喬石)전인대상무위원장.리루이환(李瑞還)전국정협주석 다음인 서열5위에 오를 정도로 彭에 대한 현 지도부의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특히 아직도 군부에 막강한 세력을 갖고 있어 江주석의 큰 위협세력으로 꼽히는 양상쿤 전국가주석을 견제할 원로가 사라졌다는게 무엇보다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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