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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상황 반영 안 된 사회서비스 일자리 … 고작 1만4000개 늘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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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산층이 실직이나 사업 실패 등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쉽다. 한국사회보장학회 조사(2005년) 결과 타격을 받은 지 4년9개월 만에 빈곤층이 되었다. 이 과정에 약간의 도움만 있으면 재기할 수 있다. 1차적인 안전망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각종 공적부조 제도를 동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대책을 뜯어 보면 한가롭기 짝이 없다. 실직이나 폐업을 하게 되면 당장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6개월간 실업급여를 받을 때 일자리를 구하면 다행이지만 요즘같이 최악의 불황기에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선진국에서 활용하는 제도가 사회서비스 일자리다. 간병인, 독거노인이나 저소득 아동 돌보기, 도시락 배달, 산모 돕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일자리는 고용 창출과 복지 서비스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그런데도 이번에 정부는 대책을 만들면서 고작 1만4000여 개를 늘리는 데 그쳤다. 부처별로 조금씩 할당해 숫자 맞추기를 한 듯하다. 그러다 보니 어떤 데는 줄어든 곳도 있다. 이마저 무직가구 여성에게 기회가 가도록 범위가 한정돼 있다.

서울 도봉구 독거노인 도우미 조규숙(48·여)씨. 조씨는 도봉구의 도봉노인종합복지관 소속 18명의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중 한 사람이다. 방학1동에 사는 독거노인 34명을 돌보고 한 달에 받는 돈은 60만원이 채 안 된다. 지난해는 생활관리사 24명이 관내 독거노인 110여 명을 돌봤지만 올해는 오히려 6명이 줄었다. 독거노인이 줄거나 이 일을 원하는 지원자가 줄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독거노인 수와 지원자는 계속 늘고 있지만 지난해 동사무소가 예산 문제로 사람을 줄였다. 퇴직금이 문제였다.


정부는 당초 사회적 일자리 예산을 줄이려 했다. 그러다 지난해 가을 정부 예산을 확정할 때는 전년도와 비슷하게 맞췄다. 그나마 1만4000개라도 늘어난 것은 국회 덕분이다. 예산 심의를 할 때 금융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국회가 약간 늘려 놓은 것이다.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하나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은 1000만원 정도다. 보건복지가족부는 1조원을 들여 10만 개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업무보고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복지부 관계자도 “사회서비스 일자리 1만4000개를 늘리는 것으로는 현재의 위기 상황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시인한다. 사회서비스 일자리 대책에 위기 상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실토하는 것이다.

일자리만큼 중요한 중산층·서민층 보호 대책은 촘촘한 사회안전망이다. 그러나 모든 행정부처의 대책을 따져봐도 현재의 위기 상황에 부합하는 대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나마 내놓은 게 긴급지원제도의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확충하겠다고 약속한 대표적인 사회안전망이다. 갑작스레 위기가 닥친 가정에 6개월치 생계비와 의료비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원래는 가장의 사망이나 가출 때만 해당됐는데 폐업이나 사고·질병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경우도 대상에 포함시켰다. 정부가 예상한 올해 폐업 건수는 2만 건. 한 달에 음식점만 5000개가 문을 닫는 마당에 2만 건은 너무 한가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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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여기에는 가장 중요한 예산 확보 방안이 빠져 있다. 폐업한 사람에게 이런 혜택을 주려면 올해 891억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에서 재산이나 소득 기준을 속여 돈을 타낸 사람을 단속해 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또 3월에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발표대로 될지도 의문스럽다. 2월까지 법을 바꾸고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바꾸기 쉽지 않을 것이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김진수 교수는 “우리는 다른 나라와 달리 1998년에 외환위기를 경험했고 그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떤 대책이 시행돼야 하는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정부 대책에는 그런 경험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빈곤 추락 예방에 전혀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대통령이 지적하니까 그제야 흉내만 낸 것이다. 위기에 대한 마인드가 안 돼 있다”고 덧붙였다.

저소득층을 정부 보호 장치에 끌어들이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빈곤층 예방 못지않게 정부 보호 대상을 확대하는 게 중요한데 그렇지 못하다. 현재 정부 보호를 받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154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2%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생계비·의료비·주거비 등 20여 가지 혜택을 받는다. 이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려면 선정 기준을 대폭 완화해야 하지만 이번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 기초 수급자가 되면 모든 지원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는 ‘All or Nothing’ 시스템을 개선해야 하는데 그에 대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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