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본선 7국' 이세돌의 호연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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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기 왕위전 본선 7국
[제9보 (135~159)]
白.李世乭 9단 黑.趙漢乘 7단

바둑판 위에서 조한승은 부드럽고 이세돌은 서릿발 같다.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부드러움은 능히 강함을 이기는 것이라고 갈파했건만 하늘을 찌를 듯한 이세돌의 패도적인 호연지기는 그리 쉽게 꺾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조7단은 유유히 판세를 주도했다. 이9단이 구름처럼 변화를 일으키며 허허실실의 온갖 수단을 전개했으나 조7단은 걸려들지 않았다. 그러나 종반 끝내기로 접어들기 직전에 조한승은 문득 난조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백진에 너무 깊이 쳐들어가다 끝내 교묘한 역습에 휘말리고 말았다.

조한승이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135로 잇자 이세돌은 유유히 136으로 끼워 두점을 잡는다. 상변 침투에 앞장섰던 흑▲들은 결국 적진을 벗어나지 못한 채 고혼이 되고 말았다. 미세하다고는 하지만 흑은 이젠 덤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10집은 우세했던 바둑이건만 아차 하는 사이 판은 뒤집히고 만 것이다.

140은 패를 피한 안전한 끝내기. 온종일 변화를 몰고다녔던 이9단이 이젠 더 이상의 변화가 필요없다며 셔터를 내리고 있다. 141은 '참고도'흑1로 먼저 끊은 다음 두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그러나 깊은 자책과 가슴앓이 때문에 조한승의 손끝은 정밀성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조한승이 왜 막판에 가서 미쳐버리고 말았을까. 우세했던 바둑인데 왜 고집을 부렸을까. 입단동기생인 이세돌과의 특별한 승부호흡 탓일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게 승부의 불가사의한 점이기도 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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