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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티나는 진지함은 가라! 개그에서 ‘눈물의 진화’ 엿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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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30년 전 여고생들은 릴케의 시집을 허리춤에 끼고, 카프카를 이야기하며 울고 웃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학창시절을 통과하기 위한 바이블이었다. 하지만 요즘 여고생은 릴케의 시집을 읽는 대신 <무릎팍도사>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을 켠다. 인간의 그늘진 곳을 들여다보며 그 고통을 함께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웃음을 통해 즉각적 즐거움을 느끼는 편을 택하는 셈이다.

석학 이어령이 말한다, 왜 개그인가? #개그 전성시대

문학소녀가 사라진 자리를 개인기로 무장한 개그소녀가 채우는 시대다. 이런 시대를 우리는 문화사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개그 전성시대에 대한 문화사적 고찰을 듣기 위해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을 만났다. 그는 <월간중앙>이 2009년 신년호 ‘별난 페이지’를 만들며, 그 첫 주제로 ‘개그, 사방으로 튀다’를 마련하는 데 결정적 조언을 한 주인공이다.

-황석영·강수진·허영만·이외수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성인과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예술가들이 개그 프로그램인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개그맨 강호동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습니다. 또 개그맨이 과거 아나운서들이 진행하던 시사 프로그램의 사회자로 나서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제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대학 축제에 코미디언이 나와서 사회를 보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 축제를 전부 코미디언이 진행한다고 해요. 학생들 사이에서도 뭔가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면 ‘왕따’당하죠. 진지한 것은 촌스러운 것이 됐고, 생각 없이 그냥 웃는 것을 세련된 것으로 취급하는 시대가 온 것이죠. 웃음도 인터넷처럼 힘 안 들이고 ‘한방’에 클릭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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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초신경 자극하는 개그는 진통제적 웃음… 알맹이 꽉 찬 창조적 웃음으로 거듭나야

문학소녀가 사라진 시대

-이런 현상을 보면 개그가 장르를 넘어 우리 사회의 문화코드가 된 것 같은데, 문화사적으로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보시는지요?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구분하는 말로 ‘3W’라는 경제용어가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감이 잘 안 오는데, 부(Wealth)·복지(Welfare)·웰빙(Well-being)을 가리키는 말이죠. ‘부’는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단계를 뜻합니다.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고도성장기 우리의 목적은 오로지 부의 축적이었어요. 거의 동물적 단계에서 풍요롭기 위해 애쓰는 단계죠. 이때까지는 나 혼자 배불리 먹고 잘 사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도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주위에 성장에서 탈락한 소외된 이웃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런 이웃을 동정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못 사는 사람이 밤낮으로 자기 집 앞을 지나다니면 내가 등 따습고 배부르다고 해서 마음이 편하겠어요?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복지’라는 개념이죠.

나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 사는 데 불편함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단계입니다. 그럼 ‘웰빙’은 무엇이냐? 웰빙은 우리말로 해야 이해하기 쉬워요. 이것이 우리말로는 ‘안녕하셨어요?’ 혹은 ‘밤새 안녕하셨습니까?’의 ‘안녕’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안녕이 ‘편안할 안(安)’에 ‘편안할 녕(寧)’ 자를 쓰죠. 내 이름에도 이 ‘녕(寧)’자가 붙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웰빙이라는 것은 몸과 마음의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욕망입니다. 옛날에는 입에 풀칠하는 것이 먹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건강과 진귀한 맛을 즐기기 위한 웰빙 푸드를 찾아요.”

이 고문은 그러면서 “지금까지 한국인이 살아온 시대를 ‘3W’로 구분하면 부를 추구하던 시대는 눈물의 시대였다. 사실 한국 민족은 어느 민족보다 눈물이 많은 민족”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내가 <흙 속에 저 바람>를 쓸 때 ‘눈물이 골짝 난다’는 말을 썼습니다. 눈물이 얼마나 많이 흐르면 산에 골짜기가 날 정도라는 뜻이죠. ‘birds sing’을 영어로는 ‘새들이 노래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새가 운다’고 합니다. 종소리도 울고요. 감동받았다는 표현도 우리 때는 ‘가슴이 찡하다’는 표현을 썼어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감동 먹었다’고 하고, 눈물이 글썽거리는 것을 ‘안습’이라고 하지요. 눈에 안약을 넣은 것처럼 습기가 찬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눈물의 시대에서 웃음의 시대, 비극의 시대에서 희극의 시대로 대 전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사회가 부를 추구하던 경제의 고도성장기와 그 과정에서 생긴 사회의 그늘로 눈을 돌린 복지를 추구하던 민주화 시대에는 고통의 눈물과 분노가 지배했는데, 마음과 몸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웰빙 시대에는 즐거움과 웃음을 요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웃음과 함께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으로 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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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코미디는 어려운 시절에 흥행한다고 하는데, 반대로 우리가 잘살게 되면서 웃음을 추구하게 됐다는 말씀이신가요?
“웃음 자체의 콘텐츠와 태도가 다르지요. 해방 직후의 어려운 시절에 우리를 웃겨준 사람은 코미디언들이었어요. 해방 직후 한 대표적 코디미언이 한 민담이 있는데, 그 내용이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일본은 일어난다. 조선사람 조심하라’는 것이었지요.

이것이 예언처럼 들리지만, 나라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어서 웃기는 말로 들리지요. 웃기지만 알맹이가 무거움으로 꽉차 있어요. 텅 빈 웃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풍자적 웃음에서 ‘난센스 라프터’라고 하여 몸짓이나 말투에서 알맹이가 가볍고 의미가 없는 웃음이 증대되어 갑니다. 그것이 웰빙 시대의 개그지요.

그래서 요즘 불황의 웃음은 당시의 웃음과는 많이 다르지요. 예를 들자면 불황으로 한 가족 여섯 식구가 집단자살하기 위해 아파트 꼭대기에서 몸을 던졌다고 하지요. 그런데 한 사람도 떨어져 죽지 않았어요. 알고 보니 아버지는 ‘기러기 아빠’, 어머니는 바람난 주부, 큰아들은 제비족, 둘째는 비행소년, 셋째는 덜 떨어진 애, 그리고 딸은 ‘날라리’였다는 것이죠.

어둡고 괴로운 현실을 반영한 것인데도 그냥 웃겨요. 논리적 의미가 아니라 말의 이미지와 소리로 그냥 날려보내는 것, 그냥 넘어가는 것, 그것이 웰빙 시대의 개그라는 것이지요. 부는 물질의 풍요를 가져다 주지만 마음이나 몸까지 편하게 하지는 않아요. 웃음으로 마음의 풍요를 찾으려고 하는 웰빙 시대의 웃음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공기처럼 가벼운 것을 찾지요. 그래야 뜨거나 날 수 있어요.

입가심 같은 웃음

웰빙 시대란 ‘등 따습고 배부른 것’에서 ‘높은 베개 베고 발 뻗고 지내는’ 욕망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입니다. 그런데 물건의 풍요가 곧 마음의 풍요는 아닙니다. 집에 밍크코트가 몇 벌 있다고 해서 그 집안이 행복한 것은 아니니까요. 아버지·어머니·형제들이 우글우글한 집에 텔레비전부터 휴대전화까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도 웃음이 없는 집이 많습니다.

가족 간에 대화도 없고요. 부는 이뤘지만 마음의 풍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죠. 고도성장시대 처자식 신경 안 쓰고 정신 없이 일한 결과 부는 이뤘는데 돌아보니 마음은 텅 빈, 그래서 그 허한 마음에 급전 빌리듯 개그에서 웃음을 찾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단계라는 말이죠.”

-급전 빌리듯 웃음을 개그에서 찾는다? 무슨 의미죠?
“마음의 빈곤을 치료해줄 수 있는 것이 문화 콘텐츠입니다. 양질의 음악·연극·소설·춤 등이 이를 위한 대표적 문화 콘텐츠이자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시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유통될 수 있는 정보 콘텐츠죠. 그런데 우리가 고도성장을 추구하는 동안 문화를 전부 희생시켰습니다. 그렇다 보니 정보기술(IT)을 이용한 정보 미디어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했는데, 그 IT에 올려 태울 콘텐츠, 다시 말해 알맹이가 없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우수한 소설·시·드라마가 있어야 작품을 상품화해 정보미디어에 올려 태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영화·연극으로 만들어지고, 심지어 만화로까지 만들어져 어린이까지 다 봅니다. 우리도 이런 시스템으로 가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리소스가 없는 것이 문제죠. 다시 말해 웰빙의 시대가 오면서 마음의 빈곤함을 채울 웃음의 수요는 증가했는데, 이를 채울 양질의 문화 콘텐츠가 없다 보니 이런 틈바구니를 개그와 같은 웃음의 양식이 비집고 들어온 것입니다.”

-개그가 주는 웃음에 어떤 문제라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개그는 웃음 자체를 상품화한 것입니다. 정말 감동을 받고 즐거워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위해 웃는 것이지요. 그 나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는 있지요. 하지만 꽃을 보고 즐거워 웃는 웃음 또는 애인을 만나 즐거워 웃는 웃음과 달리 간지럼을 태워 웃는 웃음은 다릅니다. 개그는 의식이라기보다 감각과 신경을 건드려 일으키는 웃음이라는 것이지요. 복잡한 문명의 쓴 맛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시적으로 잊게 하는 입가심 같은 것이지요.”

-입가심 같은 웃음이라고요?
“예전에는 갑갑하거나 고통스러우면 그것을 눈물로 씻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죠. 그런데 웰빙 시대가 되면서 비극적인 엄숙주의가 가고 별 생각 하지 않고 그때그때 웃을 수 있는, 급조한 마음의 풍요를 가장한 문화상품이 대거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그런 인스턴트 상품이 개그죠.

그러므로 개그에서는 ‘고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아무리 여러 번 봐도 볼 때마다 웃음이 납니다. 하지만 개그맨이 어제 했던 개그를 오늘 또 하면 아무도 안 웃어요. 이는 개그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신경을 자극해서 웃기기 때문입니다. 신경을 되풀이 자극하면 마비되지요. 그렇다 보니 갈수록 과장할 수밖에 없죠.”

-개그가 우리보다 열등한 존재를 흉내 내고, 이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왜입니까?
“현대 문명사회의 특성은 신과 영웅이 사라진 시대라는 데 있지요. 서사예술이 처음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인간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인 신이었습니다. 그리스신화가 그 예죠. 그러다 그 대상을 영웅으로 바꿉니다. 서사시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죠. 영웅은 신과 비슷한 능력이 있고 심지어 신을 이기는 영웅도 있지만, 단 한 가지 점에서 인간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죽는다는 점이죠.

영웅의 시대 다음에 나타나는 것이 왕, 요즘 말로 하면 CEO나 리더 등을 주인공으로 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드라마이지요. 그런 높은 신분을 지닌 사람이 추락하는 데서 비극이 생기고, 거기에서 일상적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리얼리즘 소설입니다. ‘신화-영웅 서사시-비극-소설’ 이렇게 서사예술의 주인공들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언제부터인가 죽어도 신문 사회면에 부고조차 실리지 않을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가 나오죠. TV 드라마나 시트콤 속의 주인공들이 그 예입니다.

이윽고 현실 아래로 열등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을 때 ‘아이러닉 모드’라는 특이한 양식이 생겨납니다. 늑대인간처럼 동물화한 인간을 등장시키거나 신체부자유한 인간을 조롱하는 장르가 탄생하는데, ‘아이러닉 모드’라고 하는 코믹 드라마도 여기에 속하지요.”

신화의 모드에서 ‘아이러닉 모드’로

-오늘날 개그가 뜨는 것은 영웅이 사라진 것과 관계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대중사회에는 영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중화라는 것 자체가 모두 ‘플랫’한(편평한) 것으로 만들지요. 얼마 전 대학생들한테 존경하는 사람을 써보라고 했더니 상당수의 학생이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고 대답하더랍니다. 우리 사회에서 ‘멘토’가 사라진 것이죠. 영웅이 있고 멘토가 있는 시대에는 이들을 현실 속에서 좌절시키면, 그것이 바로 비극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따르면 비극은 가장 귀한 사람이 가장 낮은 신분으로 추락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애초부터 낮은 사람은 추락할 곳이 없죠. 그러니 인간 이하로 떨어뜨리게 되죠. 그래서 인간이 동물을 모방하고, 정상인이 아닌 신체장애자를 모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웅이 사라지고 멘토가 사라진 시대에 유일한 웃음의 대상은 나보다 못한 존재를 모방하는 것이죠. 과거 왜 신들을 이야기했느냐? 인간의 죽음을 울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럼 왜 오늘날 바보를 이야기하느냐? 편안하게 웃기 위해서입니다.”

-개그의 시대가 왔다, 그러니 불황을 극복하는 웃음도 개그로부터 나온다는 말씀입니까?
“불황은 거품경제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불황의 반대말은 활황이라는 말인데, 활황은 동시에 거품이기도 하지요. 경제 전문가들은 어떤 거래가 실물보다 5~7배로 늘어나면 거품이 꺼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IT가 문화 콘텐츠와 연결되지 않고 금융상품의 머니게임으로 나가게 된 데서 오늘날의 이 불황과 시장의 파탄이 발생한 것이지요.

거품경제의 시대에는 웰빙이라는 낙관적 인생관과 가치관의 거품이 동시에 일지요. 허황한 이미지를 좇다 좌절하는…. 하지만 세 끼 밥은 먹지만 가슴은 텅 빈 사람들에게 가짜 웃음이라도 있어 정신병에 안 걸린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요즘 개그가 뜨는 것도 그만큼 수요가 늘었다는 말입니다. 그나마 개그 덕분에 사람들은 진통제적 웃음으로 견디는 것이죠.”

이 지점에서 이 고문은 ‘문화 향유권’을 거론했다. 모든 사람은 문화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말인데, 핵심은 문화를 누구나 즐긴다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높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안목을 누구나 갖추도록 고양시켜주는 문제라는 것이다.

“아무리 기막힌 오페라를 몇 억 원을 들여 만들어도 몇몇 사람만 위안받고 다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재미없어 하고, 골치만 아파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점점 질이 저하되는 신경의 자극제를 마음의 풍요로 착각하기 쉬운 것이지요. 유동식만 먹다 영영 치아를 버려 딱딱한 것을 씹지 못하는 웰빙이 돼버리는 것이지요. 개그의 대중문화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높여주는 노력을 서로 해야지요. 웃음의 업그레이드로 불황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문화 콘텐츠다운 콘텐츠를 만들어 방송과 인터넷에 뿌려야 합니다. 요즘에는 아버지가 아들한테, 아들이 아버지한테, 선생이 학생한테, 정치인이 국민한테 심각한 것을 모두 개그 식으로 넘겨버리려고 합니다. 4,000만 명 전 국민이 인물과 사물을 개그화하고, 패러디화하는 것이죠. 이 떫은 웃음을 빨리 창조적 웃음으로 바꿔야 합니다.

“불황기, 진정한 웃음의 문화 콘텐츠 긴요”

즉, 한번 웃고 뱉어내는 웃음이 아니라 진정한 웃음으로 가슴의 체증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스파클링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영화 <킹콩><타잔><미키마우스>의 공통점은 모두 1930년대 미국의 불황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불황기에 이런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웰빙이라는 낙관주의의 안이한 ‘안녕’을 참된 영혼의 ‘안녕’으로 높여가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창조의 방향은 ‘스테이 헝그리 앤드 플리쉬’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보다 더 배고프고 남들이 어리석다고 할 지경으로 자신의 꿈을 좇아야 합니다. 고통과 진지함을 창조의 동력으로 삼아 진정한 웃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3W가 공존하는, 물질과 마음의 풍요가 동시에 삶의 잔에 넘쳐나는 사회가 돼야지요. 그때 우리는 정말 큰소리로 ‘삶은 아름다워’라고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부터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고, 웃음은 만복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이마를 치는 웃음보다 마음을 치는, 불황의 어두운 사회에 복을 가져다 주는 웃음이 넘쳐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효림 기자 hy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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