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원’새해 선물, 창살 없는 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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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16·가명)양은 지난해 12월 15일 경기도 안양에 있는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에 들어왔다. 이 학교는 국내 유일의 ‘여성 소년원’이다. 은진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금품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최장 2010년 12월까지는 이곳에서 생활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31일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안양소년원) 신축 교육실습장 복도에서 건축가 이민아 소장(中)이 강호성 원장左, 오영희 서무과장과 함께 조경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야외와 접하는 교실과 복도 한쪽 면 전체가 유리로 돼 있다. 제과·제빵실 옆에 마련된 야외 데크에는 벤치가 설치될 예정이다. [김태성 기자]


은진이는 “소년원행이 결정되고 나서야 내가 지은 죄의 무거움을 알았다”고 했다. 은진이의 꿈은 파티셰(제과·제빵사)다. 은진이는 학원을 다니며 제과·제빵을 배웠다. 당분간 그 꿈을 접어야 했다. 은진이가 받아들여야 할 ‘죄의 대가’였다.

그러나 은진이는 1일 기쁜 소식을 들었다. ‘제과·제빵실’이 있는 새 강의동의 증축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들은 은진이는 “소년원 생활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전환점)’가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제과·제빵실이 생기는 것만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완공된 ‘정심원’ 건물에는 생활관 등에 설치된 쇠창살을 볼 수 없다. 전국 소년원 중 유일하다. ‘엄마 건축가’ 이민아(42) 소장의 아이디어다. 이 소장에게는 중학생 딸이 있다.

소년원은 지난해 건물 증축을 계획했다. 생활공간을 늘리고 제과·제빵반을 운영할 교실을 만들기 위해서다. 하루 평균 수용인원이 2004년 86명에서 지난해 223명으로 세 배 가까이 늘어난 데 따른 조치였다.

증축 업무를 맡은 법무부는 공사 책임자를 물색했다. 그러다 소년원 시설에 대한 연구를 한 건축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협동원’이라는 건축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이 소장이었다. 그의 석사 논문은 ‘소년원 건축 환경 개선에 대한 연구’였다.

소년원 공사는 9월에 시작됐다. 이 소장은 원생들의 교육실습실에 창살이 없도록 설계를 했다. 법무부와 소년원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 망설이다 소장의 계획을 받아들였다. 이 소장은 “아이들은 범죄자이기 이전에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소녀”라며 “필요한 건 쇠창살이 아니라 꽃씨, 무씨와 묘목”이라고 설득했다.

‘정심원’은 흰색 단층 건물(436.68㎡)로 세 개의 교실과 세 개의 정원이 샌드위치처럼 섞여 있다. 각 교실의 한쪽 벽은 유리로 돼 있다. 교실 밖의 꽃밭·텃밭·잔디밭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복도에는 레일이 부착될 예정이다. 원생들이 그린 시화와 그림을 걸어놓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곳에는 ‘갤러리 복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학교 강호성(45) 교장은 “소년원 건물로는 아주 파격적”이라며 “철창살이 없는 외부 환경과 유사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스스로가 변할 수 있는 동기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경공사는 시작도 못했다. 텃밭과 꽃밭을 꾸밀 비용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12억원 정도가 들 것으로 예상되는 공사였지만 법무부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은 10억원 정도에 불과했다.

이 소장은 최근 경기농림진흥재단에 e-메일을 보내 조경공사 지원 약속을 받아냈다. 이 소장은 “예산만 좀 더 있다면 생활관의 쇠창살을 새로 디자인하고 정문 옆 벽화도 새로 그려주고 싶다”고 했다.

소년원과 큰 길을 이어주는 6m 길이의 담벼락에는 동화 ‘미운 오리 새끼’를 표현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은진이는 소년원에 들어오면서 그 벽화를 봤을 것이다. 소년원쪽 벽에는 ‘오리 새끼’가 그려져 있고, 큰 길쪽 벽에는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는 백조’가 표현돼 있다. ‘미운 오리 새끼’의 해피엔드가 수용된 아이들에게도 실현돼야 한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박유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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