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위기를 기회로 바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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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앞으로 당분간은 더 어려워질 것도 분명해 보인다. 소망과 기대는 움츠러 들고, 걱정과 불안이 그 틈으로 스멀스멀 다가오는 느낌, 많은 이들이 가지셨지 싶다. 하지만 그렇게 기죽을 필요가 없다. 어려운 건 우리만의 일이 아니고, 오히려 ‘위기는 곧 기회’라는 상투적 표현을 현실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시기의 완급과 규모의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재정·금리 정책을 양 축으로, 전대미문의 혈전을 벌이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좀 더 많은 카드를 쥐고 있다. 우선 재정분야가 상대적으로 건전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33.4%(2006년 말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7.1%)을 한참 밑돈다. 이는 필요할 때 재정확대와 감세정책을 함께 펼 수 있는 여력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이 비율이 170%를 넘어, 재정 건전화라는 중장기 목표와 재정 투·융자 확대라는 단기 처방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일본과 비교하면 형편이 훨씬 좋다. 사실 재정 건전화를 강조하는 이유도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이 왔을 때(우리의 경우는 여기 덧붙여 앞으로 닥칠 통일에 대비키 위해서도) 재정이 해줘야 할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금리정책 면에서도 우리는 아직 활용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3%로 대폭 낮췄지만, 이미 사실상 제로금리에 돌입한 미국·일본 등과 달리 1∼2%포인트의 추가 인하란 유용한 정책카드를 여전히 갖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다. 온갖 부문에 누덕누덕 붙어 있는 각종 규제의 철폐나 완화만 해도 돈 안 들이고 새로운 수요, 새로운 투자를 일으킬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다.

외부적으로도 비관만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수출이 성장을 견인해온 우리의 경제 구조상 전 세계적 불황이 미칠 영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더 클 것이란 걱정을 하는 건 당연하다. 이 대목에서 한·중·일 3국의 역내 협력 강화를 다시 생각하고 싶다. 동아시아 3국의 경제력은 이미 전 세계의 6분의 1에 달하는 상당한 규모로 성장했다. 상이한 정치 체제와 곡절 많던 역사의 경험처럼 적잖은 제약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중·일 3국 간 교역과 투자 또한 엄청나게 늘어났다.

올해 일본이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하고 있고, 중국도 5∼6%의 저성장을 우려하고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3국이 갖고 있는 수요는 방대하다. 한국의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일본은 1억3000만 국민 대부분이고, 13억 중국에서도 2억 명 정도는 이미 이 수준에 올라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비행기로 두세 시간 정도의 거리 안에 3억이 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수요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중국 경제가 단기적 어려움은 겪겠지만 기본적으로 성장동력이 강하다는 점 또한 앞으로의 수요 확대에 기대를 갖게 한다.

최근 한국에 대한 중국·일본의 통화 스와프 한도 확대는 3국 협력과 관련, 중요한 진전이었다. 1997년의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제기되어 온 한·중·일의 경제협력은 그 후 10년간 수사적 표현 외에 실질적으로 진전된 것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의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는 역내 상호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구체적 실현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제 동아시아 3국의 협력 수준을 한 차원 높여 무역과 투자, 인적 교류의 전면적 확대로 나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일본과 중국과의 라이벌 관계, 일본과 미국의 특수 관계 등을 감안할 때 우리가 중재자로서 이니셔티브를 쥘 수도 있다. 무엇보다 현재의 위기상황을 수습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때 동아시아 3국의 협력 강화는 상호 윈-윈 게임의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

내부적으로든 외부적으로든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만 어려운 게 아니다. 우리가 가진 상대적 이점을 찾아내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박태욱 경제담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