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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부터 감리까지 총체적 부실 - 고속철도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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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WJE사의 경부고속철도 천안~대전 시험선 구간과 서울~천안 일부 구간에 대한 안전진단 결과는 총체적 부실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WJE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말까지 6개월간에 걸쳐 총 1천12곳을 점검한 뒤 이중 보수

가 불필요하다고 진단한 2백97곳(29.4%)을 제외한 7백15곳(70.6%)에 대해 하자가 있다는 판정을 내렸다.이중 보수가 불필요하고,표면 마무리 개선등 현지 시정이 가능한 3백51곳(34.7%)을 제외한다 해도 점검대상의 약

36%가 재시공이나 보수.추가조사를 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은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 결과를 놓고“아무리 외국기술을 들여다놓은 고속철이라 하지만 토목.건설등 우리의 총체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자괴감(自愧感)을 토로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재시공 판정을 받은 라멘교량(門자형 교각에 상판슬래브를 직접 치는 방식)3곳.도입 당시 설계사와 공단측은 일본 신칸센의 일부 구간이 같은 방식의 교량을 가설한 사실을 보고 이 공법을 도입했으나 이번 진단에서 다른

공법,즉 패드식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는 통보를 받았다.WJE는“기술부족으로 이 공법으로 시공하기에는 역부족인 데다 그나마 균열과 콘크리트 공극(空隙)이 과다해 재시공해야 한다”는 판정을 내렸다.

감리도 큰 문제.공사가 착공된 것은 92년6월.이때부터 93년6월까지는 감리제도가 없어 발주처인 공단직원이 나가 공사를 감독했다.이후 94년12월까지는 감리소홀 문제가 불거지자 외국감리를 도입했으나 국내 감리사의 하청격인 보조계약

자여서 기술자문 역할만 했다.어쩌다 지적사항을 올리고 아이디어를 내놓으려 해도 국내 감리사가 틀어 막기 일쑤였다는 게 공단측 설명이다.공단은 지난 1월 뒤늦게 외국감리사와 직접 계약해 이제 실질감리 3개월째다.이번 부실공사의 상당부

분도 감리부실에서 비롯됐다는 게 공단측의 해명이고 보면 책임의 상당부분은 면하기 어려울 듯하다.

건설사와 기술자들의 무사안일한 시공자세도 질타받아 마땅하다.상당수 구조물에서 작업인부들이 먹다 만 음식찌꺼기등이 나와 WJE 점검전문가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것.

이번 점검에서 가장 많은 지적을 받은 분야는 무분별한 콘크리트 패칭(땜질).WJE는“시공사측이 불균일한 콘크리트 품질과 부실한 콘크리트 타설을 감추기 위해 패칭을 많이 사용한 것 같다”며“이는 표면결함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추가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한편 WJE는“이번 진단은 감춰져 있는 모든 문제점을 찾아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으며 파악되지 못한 결함의 특성과 범위를 입증할 수 있도록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총체적인 부실로 엄청난 돈과 시간을 요하는 대형 국책사업이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정부가 뒤늦게나마 부실공사의 실상을 이 정도라도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은 더 큰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불행중 다행이다. 〈신동재 기자〉

<사진설명>

경부고속철도 천안~대전의 시험선구간중 상봉터널은 부실한 콘크리트 타설을 감추기 위해 땜질을 많이 해 표면결함을 초래할 수 있어 정밀검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부실시공으로 철근이 드러나 보이는 서원교(아래)와 레일슈및 교좌장치 주

변에 균열이 드러나 보이는 산동1교(아래)의 모습.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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