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숫자와현실>시장상황 뒤쫓기 바쁜 물가지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통계청이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출하기 위한 조사품목 가운데 라면 품질규격을 보면'봉지라면 1백20들이,용기라면 86들이 각각 1개씩'이라고 표시돼있다.그러나 어느 업체의 어느 제품을 조사하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관련업체들이 이런 사

실을 알면 물가당국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조사대상 품목 생산을 점차 줄여나가거나 다른 제품의 값만 상대적으로 더 많이 올리는 부작용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면은 현재 농심의'신라면'과'육개장사발면'두개를 가격지수로 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농심 이외에 삼양라면.오뚜기.빙그레등 5개 라면회사에서 생산되는 총1백30여개 품목 가운데 1.5%인 겨우 2개가'대표상품'으로 조사되는 셈이다.또 지난해 라면의 총생산 규모는 8천6백9억원인데 통계청에서 조사한 신라면(2천1백89억원)과 육개장사발면(5백억원)은 이 가운데 2천6백89억원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 소비자가 지난해 소비한 전체 라면 가운데 겨우 31.2%만이 소비자물가지수에 반영된 셈이다.

당연히 지난해 전체 라면제품 가운데 대부분인 68.8%의 물량을 사먹은 소비자들은 정부가 발표한 라면가격지수에 실제적으론 동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같이 통계청이 조사하는 소비자물가지수의 품목.규격등은 시중상품과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통계청의 설명대로라면 시장점유율등을 고려해 당초에는 가장 대중적이며 평균적인 제품을 찾아내 가격을 조사하나 시간이 흐를수록 시장환경의 변화로 이같은 괴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통계청은 물가의 대표성을 유지하기 위해 5년마다 한번씩 조사품목에서부터 규격.가중치등을 대대적으로 손질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시장환경을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라면 뿐만이 아니다.각종 공산품에서부터 수산물에 이르기까지 어느 제품이건 차이가 있을 뿐 이런 현실적인 괴리는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마련이다.

최근 통계청은 퍼스널컴퓨터 가격조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지난 95년 상반기만해도 퍼스널컴퓨터의 조사규격은'486DX2급(모니터및 부가세 포함)'이었다.그러나 이 제품은 거의 단종될 정도로 시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품이 돼버렸

다.컴퓨터가 보통 6개월의 라이프사이클을 가질 정도로 급격한 시장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통계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랴부랴 당시의 최고급 모델인 펜티엄133급으로 가격조사를 했다.그러나 올해들어서는 이마저도 벌써 이른바'한물 간 제품'으로 돼버렸다.

실제로 용산전자상가의 상인들에 따르면 하루 10명의 컴퓨터 구입고객이 찾아오면 이 가운데 7~8명은 펜티엄150급 이상을 찾고 현재 통계청이 조사하고 있는 품목규격인 펜티엄133급은 겨우 2~3명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이밖에 명태의 품질규격은'생선길이 40㎝정도에 무게가 6백 한마리'를 조사하는 것으로 돼 있다.

조사대상 품목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고 중간품질에 해당하는 크기를 선정한 것이다.그러나 대표적인 수산시장인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 나가보면 현재 통계청이 소비자물가지수를 조사하는 명태는 최고급에 해당하는 이른바'대명태'다.현재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명태의 가장 보편적인 품목 규격은 25~30㎝다.이 규격이 수산시장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사먹는 흔한 중간 품질의 상품이라는 얘기다.

통계청 관계자는“소비자물가지수 조사가 환경변화에 따라 타당성을 상실했을 땐 품질규격등을 신속히 바꿔야 하나 가격조사의 연속성에 문제가 생기는등 혼란도 만만치 않아 쉽지 않다”며“부득이 이들을 바꿔야할 땐 가격상승.품질변화 여부를 따져 신구(新舊)규격의 가격차액등을 반영하는등 보완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시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