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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tart] “암 투병 중이지만 내가 가진 걸 나누고 싶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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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씨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그러나 한시도 일을 쉰 적이 없다고 한다. 작은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그는 직접 장판과 도배 일을 하러 다닌다. 월수입은 150만원 정도다.

롯데마트 김재신 노동조합위원장(왼쪽에서 셋째)과 이삼구 지원부문장(오른쪽에서 셋째) 등 롯데마트 직원들이 월급 끝전을 모은 5400여만원을 위 스타트 운동본부에 기탁했다. [롯데마트 제공]


몸이 불편하지만 ‘기부 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동네에서 25년째 ‘새마을 지도자’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을을 위해 여름엔 방역 활동을 하고,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찾아가 집안 일을 돕는다. 무료로 도배를 해주기도 한다. 그는 “신문 기사를 읽고 어려운 아동들을 변화시키는 일에 동참하고 싶었다”고 후원의 뜻을 밝혔다.

◆기적을 만드는 소액기부=자신의 형편에 구애받지 않고 ‘작은 정성이라도 보태겠다’는 기부자들의 마음은 소박하고 따뜻했다. 이들의 선행은 이 사회에 기부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음을 보여줬다.

서울 청담동 24시간 김치찌개 식당에서 5년째 일하고 있다는 박선자(56·여)씨는 매달 2만80원(20계좌)을 기부하기로 했다. 박씨의 월급은 100만원 남짓이다. 식당 부근 월셋방에서 딸과 둘이 살고 있다. 박씨는 “항상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었는데,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다. 내 돈이 너무 적을까 걱정된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더 내고 싶다”고 전했다.

부산시 괴정동에 사는 이재환(60)씨는 암 투병 중인데도 불구하고 기부 의사를 밝혔다. 그는 “암 투병 중이다. 내가 가진 걸 다른 이들과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위 스타트 1004 기부’에 5개 계좌를 개설했다.

서울 돈암동의 노기선(57)씨는 “작은 돈이지만 내 생일(10월 4일)과 같은 금액 1004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내 자식처럼 잘 자라길 바란다”며 후원에 나섰다.

28일 서울 서소문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이 위 스타트 운동에 써 달라며 십시일반 모은 11만원을 들고 본사를 찾아 왔다. 왼쪽부터 김정훈(17)군, 정은지(16)양, 김명훈(17)군, 최수현(16)양. [박종근 기자]

청소년들이 직접 들고 온 꼬깃꼬깃한 1000원짜리 모음도 감동을 전했다. 28일 오전, 서울 서소문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11만원을 들고 본사를 찾아왔다. 60여 명의 학생이 모은 돈이 들어 있는 노란 봉투에는 1000원짜리 지폐가 가득 차 있었다. 김명훈(17)군은 “우리의 작은 돈이 모여 어려운 친구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부에 참여했다”고 했다. 인솔 교사인 김희연(31·여)씨는 “학생들이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누려왔던 것이 저소득층 아동들에겐 절실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가족 전체가 기부에 참여한 사례도 있다. 대전시 전민동에 사는 김정남(42·여)씨 가족 4명은 각자 10계좌(1만40원)씩을 후원하기로 했다. 김씨는 남편(47)과 두 자녀와 함께 3년 전부터 양로원에서 봉사 활동을 해 왔다. 김씨는 “아이들은 용돈에서 기부금이 빠져나가도록 했다. 식구들끼리 한 달에 한 번 나가서 밥 먹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며 “봉사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후원의 뜻을 밝혔다.

3계좌(3012원)를 기부하기로 한 최승배(58·서울 홍제동)씨는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기부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최씨는 1998년까지 은행원이었다. 그때만 해도 월 2만원씩 꾸준히 기부를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5년간 무직자 생활을 하면서 기부를 못했다. 그는 “별것 아니지만 시작하고 나니 기분이 좋다”며 “ARS 후원도 기회가 되면 하려고, 수첩에 전화번호를 적어놨다”고 말했다.

“작은 돈이 부끄럽다”는 할머니, “친구를 돕고 싶다”는 아이, “나도 어렵지만 보탬이 되고 싶다”는 식당 아줌마 등이 후원 대열에 동참했다. 그들이 전한 건 희망이었다.


◆아이들 삶을 변화시키는 후원금=이들이 후원한 돈은 저소득층 아동들의 복지와 건강, 그리고 교육에 쓰인다. 위 스타트 운동본부 박호준 사회복지사는 “후원자 여러분이 (주의력결핍 장애를 극복한) 치훈이(본지 12월 26일자 1면) 같은 어려운 아이의 삶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전국 7개 시·도에는 26개의 ‘위 스타트 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그 곳에는 저소득층 아동의 복지 전반을 책임지는 ‘복지조정자(사회복지사)’, 교육을 책임지는 보육 전문가, 건강을 책임지는 간호사 등 보건 전문가가 일하고 있다. 그들이 올 ‘위 스타트 5자 콘테스트’를 열었다. 운동을 다섯 자로 표현하며 그 의미를 다지자는 것이다.

‘행복 자판기’라고 표현한 속초 마을 여세진 선생님은 “위 스타트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내잖아요”라고 말했다.

속담을 빗댄 ‘춤추는 고래’도 있다. 이 생각을 보내준 고양 마을 이정숙 선생님은 “많은 선생님의 칭찬을 먹고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까요”라고 했다.

‘마중물 붓기’란 다섯 글자도 눈에 띈다. 성남 마을 이순향 선생님은 “마중물이란 옛 주택에 있는 작은 물 펌프의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먼저 윗구멍에 붓는 물이다. 위 스타트 활동이 아이들의 잠재력을 키우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강인식·한은화·김진경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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