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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39>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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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16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인근의 크로스 크릭 골프클럽은 세미 프라이빗(Semi Private) 골프장이다. 회원이 따로 있긴 하지만 누구나 미리 예약하면 골프를 즐길 수 있다. 회원권 가격은 월 250달러(약 33만원). 우리나라처럼 한꺼번에 수억원의 목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매달 일정액을 내면 무제한으로 골프를 즐길 수 있다.

밀리언 달러 회원권?

드라이빙 레인지 이용도 무료이고, 카트 사용료도 따로 받지 않는다. 필자가 골프스쿨 연수를 위해 머물던 2006년엔 우리 돈으로 약 20만원만 내면 주중·주말을 가리지 않고 골프를 즐길 수 있었다.

비회원 그린피는 보통 주중 60달러, 주말 80달러 수준. 그런데 시간·계절별로 요금이 달랐다. 예를 들어 오전 7시 이전의 새벽 시간이나 오후 3시 이후의 석양(twilight) 시간대엔 요금이 30~40달러대로 내려간다. 이뿐만 아니라 만 55세 이상 노인이나 군인에게는 그린피를 30%가량 깎아 준다.

회원권 가격이 5억~10억원을 호가하고, 비회원 그린피가 20만원을 넘는 우리나라 실정과 비교하면 꿈같은 이야기다. 미국인에게 한국의 골프장 회원권 가격이 ‘밀리언 달러’를 넘고, 그린피가 200달러 가까이 된다고 말하면 “믿을 수 없다”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도 당연하다.

최근 경제 한파가 몰아닥치면서 국내 골프장 회원권 가격이 반 토막 난 모양이다. 20억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던 ‘황제 회원권’은 물론 중저가 회원권 가격도 50% 가까이 급락했다는 소식이다.

“이렇게 가다간 회원권 가격이 90%가량 폭락한 일본 꼴 나는 것 아닙니까.”

얼마 전 시중 회원권 거래소의 전략분석가 A와 점심식사를 하다가 이렇게 물어 봤다.

“글쎄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은 달라요. 일본은 산간 오지에도 골프장을 무차별적으로 건설했다가 망했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A는 또 “수도권의 경우엔 여전히 골프장이 부족한 편인 데다 요즘엔 여성들도 골프를 즐기기 때문에 일본과 같은 폭락 사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에 지금 회원권을 산다면 어디가 좋을까요.”

“저 같으면 무조건 수도권에서 가까운 T·S·N골프장을 사겠어요. 지금은 주말 부킹 횟수가 가장 중요하지만 앞으론 ‘거리’가 제1의 조건이 될 날이 곧 올 겁니다. 골프장이 많아지면 ‘회원권’은 단순히 골프장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의 ‘이용권’이 되지 않을까요.”

2008년이 저문다. 올해 골프계 주요 뉴스 가운데엔 지방 골프장 세금 감면 조치도 빼놓을 수 없다. 그 결과 1인당 3만~4만원의 그린피를 절약하기 위해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 골프장으로 향하는 주말 골퍼가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경제 한파까지 겹치면서 국내 골프계에 만연했던 거품도 자연스레 빠지고 있다. 경제 한파가 역설적으로 버블을 제거하는 순기능을 한 것이다.

2009년엔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골프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캘리포니아 골프장 수준으로 당장 요금을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거품을 빼면 그린피는 더욱 내려갈 소지가 있다고 본다. 새해에도 모두 ‘굿 샷’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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