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처도 유토피아도 아닌, 세상과 함께 호흡하는 ‘휴게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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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31면

중앙SUNDAY와 공동 기획한 ‘21세기 대안의 삶을 찾아서’ 시리즈가 종착역에 다다랐다. 9월 14일부터 오늘까지 일곱 차례 연재를 통해 국내외 여러 대안공동체의 모습을 보여 주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연재 기획을 마치며

대안공동체는 그 숫자만큼 종류가 다양하다. 미국의 에코빌리지처럼 직장은 인근 도시에 있으면서 공동체는 일종의 코하우징 역할을 하는 곳이 있는 반면, 인도의 오로빌같이 공동체가 하나의 작은 도시가 되어 자급자족 기능을 갖춘 곳도 있다. 개인의 재산과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영국 핀드혼, 무소유를 추구하며 대가족과 같은 생활을 하는 일본의 야마기시 마을도 있다. 독일의 제그는 인간의 본질을 사랑으로 간주하고 일부일처제를 넘어 사랑의 경계를 확장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인간을 위한 기술 사용을 교육하고 실천하는 영국의 대안기술공동체도 있다.

추구하는 가치나 형태에는 차이기 있지만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기성사회에 가득 찬 물질문명의 질곡과 탈인간화 현상을 넘어 생태·영성·소유·문화적 측면에서 대안적 삶을 모색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부분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태적 삶, 타인과 함께하는 공동체적 삶,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런 공동체를 화목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규모가 작아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즉 ‘인간적 규모(human scale)’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인간적 규모’란 공동체 사람들을 모두 알 수 있고 공동체가 추구하는 방향에 자신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수준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그와 같은 규모는 대략 500명을 최대치로 간주한다. 의회처럼 서로 얼굴을 맞대고 회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는 경우에도 보통 500명 이하로 구성된다. 대안공동체는 ‘대면집단(face-to-face group)’의 성격을 지닌 ‘일차적 집단’과 유사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사회가 고도로 복합화된 오늘날 사회를 ‘대면집단’이나 ‘일차적 집단’으로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안공동체가 추구하는 목표도 그것이 아니다. 사회는 이미 복잡하게 얽힌 ‘이차적 집단’들로 구성돼 있다. 대안공동체는 그 속에서 다시금 ‘대면집단’이나 ‘일차적 집단’이 제공하는 생활양식을 체험하고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따라서 대안공동체는 기존 사회를 대신하는 대체재가 아니다. 또 현실 세상에서 벗어나 도주하려는 도피처도 아니다. 대안공동체는 세상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우리들의 삶과 함께하는 일종의 안식처이자 휴게소인 것이다.

이번 연재를 통해 대안공동체가 유토피아를 꿈꾸는 곳이라는, 혹은 특정 집단이 세상과 유리된 삶을 사는 배타적인 곳이라는 오해가 불식되기를 바란다. 문득문득 현실의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영성을 호흡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그곳을 찾아 새로운 삶의 의미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은 위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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