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선을찾아서>25. 풍혈산 風穴寺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묻는다:말을 해도 안해도 불법에 어긋나니

어찌하면 불법을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답한다:강남의 3월에는 자고새 울고

백화가 만발하여 향기롭다.

자고새 울고 백화 향기롭다 (庶鳥古鳥啼處百花香)

풍혈연소선사(896~973)가 한 납승의 참문에 답한 선문답이다. 질문 자체가 좀 어렵다.물음은 선에서 깨침의 실천구조로 제시하는 체용일여(體用一如)를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느냐는 것이다.질문의 불법은 원문에는 ‘이미(離微)’로 돼 있다. ‘이’는 언설을 넘어선 묘체,즉 본체·공·무·평등·진공을 말한다.‘미’는 현상·색·유·차별·묘유를 뜻한다.

따라서 질문은 차별의 현상계(세속현실)와 평등의 본체계(이상세계)를 하나로 통합,어떻게 해야 세속을 극락현실로 만들어 살아갈 수 있느냐는 심각한 내용이다.

풍혈선사의 대답은 강남의 풍경을 읊은 한 편의 시다.원래 선의 달인은 모두 위대한 시인이다.

사람들이 일상의 인혹(人惑)과 물혹에 끄달려 자신의 언어를 잃고 있을 때 선사들은 동심의 시,자연의 시를 던져 본래의 순수한 마음인 평상심을 일깨운다.

불교 경전의 게(偈:Gatha)와 한시의 양식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같은 선시를 게송(偈頌)이라 한다.

선가는 당초 이래로 절구체(絶句體)의 짧은 게송을 애호,스승이 제자 인가 표시로 주는 ‘전법게’로까지 발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게송은 깨침을 드러내 보이는 오도송(悟道頌:일명 개오시),임종에 남기는 임종게(臨終偈:일명 열반송)등으로 널리 활용되면서 선림의 전유물이 됐다.

선의 표현이 철학보다 시쪽으로 기운 것은 자연스럽고 적절한 것이다.선은 논리보다 감성에 더 깊은 친화를 느낀다.때문에 선이 시를 편애하는건 자연스럽다.

자고새는 꿩과의 메추리 비슷한 새로 들판,특히 봄철 유채꽃밭에서 지저귀며 노닌다.양자강 이남의 3월은 유채꽃으로 온통 들판이 노란 물결을 이룬다.

자고새 울고 온갖 꽃이 만발한 강남의 봄은 바로 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현실’이면서 인위(人爲)가 전혀 없는 자연의 흐름이다.이것이 곧 ‘불법’의 세계다.

이 아름다운 강남의 풍경이야말로 부처의 8만4천법문이요,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는 묘약이 아닌가.

풍혈화상은 임제하 4세로 1천년동안 동아시아 천하를 제패해오고 있는 임제선의 전통적 선종 종파 성립을 완성시킨 임제종 거목이다.

위앙종 개산조 앙산혜적선사(807~883)는 일찍이 “오(吳)와 월(越)지방에서 법령이 행해지다가 대풍(풍혈연소)을 만나서는 바로 그친다”는 말로 풍혈화상이 임제종 문풍(門風)을 크게 드날리리라는 예언을 한바 있다.

‘자고제처백화향’은 풍혈보다 훨씬 앞서 조동종 개창자인 동산양개선사(807~869)가 게송에서 읊조린바 있다. 그는 “천차만별이 명확하니 자고새 우는 곳에 백화가 새롭다(萬別千差明底事 庶鳥 古鳥 啼處百花新)”고 했다.

즉 사물의 천차만별은 불법의 진제(眞諦)가 명명백백히 밝혀준다.봄날 백화를 만개시킨 대지와 같은 심지(心地)를 갖춰야 절대 평등의 이상세계를 버리지 않고 온갖 차별성이 들끓는 현실세계를 수용하며 살 수 있다.

백화가 피고 지는 임운자재(任運自在)한 자연현상은 곧 우주 섭리를 따르는 자유자재고 절대자유다.노인이 나타나면 선뜻 자리를 양보하는 것도 자유자재한 생활방식이다.

목마를 때 물 마시고 피로하면 휴식을 취하는 것도 우주 섭리에서 보면 아주 이상적인 삶이요,임운자재다.

풍혈화상은 이상과 현실,평등과 차별을 분별하지 말고 한 보자기 속에 싸 안으면 세속이 곧 극락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절 경내로 들어서는 문 위에는 ‘석두활로(石頭滑路)’라는 편액이 붙어 있어 조동종 사찰임을 직감케 했다.

원래 이 화두는 마조선사와 쌍벽을 이룬 석두희천선사의 날카로운 제자 지도방법을 상징하는 화두다.청원-석두법계에서 조동·운문·법안종등 3개 선종 종파가 파생했다.

첫눈에 띄는게 절 한가운데 우뚝 선 대형 탑이다.우선 눈여겨두기만 하고 방장실로 들어가 인사를 나눴다.

선당은 아직 문을 못 열었고 각자 요사에서 화두들을 들고 간화선을 한다고 한다.

조동종은 원래 화두를 들지 않는 묵조선(默照禪)인데 임제종의 간화선을 한다니 다소 의아했다.그러나 지금은 이런 구분이 없고 모두 간화선을 한단다.

상주 승려는 20명인데 그중엔 비구니가 두명 있다고.91년부터 승려가 입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송대 전성시는 승려가 1천5백명,민국시대도 80여명이 상주했다.문혁때는 학교로 사용됐으나 성급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었기 때문에 군부대가 주둔,파괴를 막았다는 것이다.

5대·송초의 임제종 본영이었던 풍혈사는 북위때 창건돼 향적사(香積寺)라 칭했고,수나라때는 천봉사,당나라 이후는 백운선사(白雲禪寺)로 칭해왔다.풍혈사는 백운선사의 속칭이다.현존 건물은 금·원·명나라때의 건축들인데 아주 잘 보존돼 있다.

이쯤해서 답사의 목적인 풍혈선사 묘탑을 안내해달라고 했다.방장 석영국(釋永國)화상은 기자가 들어갈 때 눈여겨봤던 그 탑으로 안내했다.

아뿔싸! 탑명(塔銘)이 ‘7조탑(七祖塔)’이다.

6조 이후 조사의 전법부의(傳法付衣)전통이 끊어지면서 7조를 자칭,타칭한 선사(남악·청원·하택선사 등)는 많지만 풍혈화상은 이들보다 2백년 정도 뒤의 인물이니 도저히 맞질 않는다.

방금 절에서 얻은 ‘풍혈사지’를 펼쳐보니 7조탑은 정(貞)선사탑이며 당 개원 26년(738)건립,현존하는 전국 1백개 당나라 탑중 가장 온전하게 보존된 당탑(唐塔)이라고 돼 있다.

정선사는 속성이 장(張)씨고,장안(현 서안)출신인데 입적하자 현종이 재상 최군(崔郡)과 비서관등을 파견,그 덕망을 기려 사리를 수습한 후 문도들과 협력해 이 탑을 건립했다는 것이다.

9층 4면 전탑인데 높이가 27m고 포물선형으로 산 위에서 보면 마치 아름다운 여자의 눈썹같아 요조숙녀를 보는 듯하다고 했다.

방장도 더 이상은 고집하지 않았다.탑림이 다른데 있느냐고 물었더니 상탑림·하탑림 두 군데나 있단다.풍혈선사탑은 틀림없이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일단 큰소리를 쳐놓고 탑림으로 달려갔다.방장과 불교협회 간부들도 동행했다.

예측대로 하탑림에서 풍혈탑을 찾아냈다.4면 5층 전탑인데 탑명이 먼지에 쌓여 보이지 않아 기어올라가 닦아내고 겨우 찾아냈다.“네놈이 네 조상을 모르는데 어찌 내가 네 조상을 알랴.”

돌아오는 길에 방장이 일행중의 임제종 승려한테 내뱉은 한 마디다.일행이 모두 폭소했다.조동종인 방장이 임제종 승려에게 던진 조크였지만 풍혈탑 때문에 외국인한테 당한 수치(?)를 한순간에 만회해버렸다.

기자는 이 한마디에 방장의 번뜩이는 선기(禪機)를 짜릿하게 느끼면서 선승의 본색을 새삼 경탄했다.그러나 이 7조탑은 한동안 기자를 괴롭혔다.지금까지 뒤져본 선종서적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조정에서 그 정도의 큰 탑을 세워준 인물이라면 당연히 선종사에 나와야 한다.

귀국후 온갖 서적을 뒤지며 7조 정선사를 찾았으나 허탕이었다.오리무중을 헤매다 중국 선종사 전공인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정성본스님한테 사연을 팩스로 보내 조언을 구했다.그 역시 며칠후 그런 사람이 선종사에 안나온다는 회답을 보내왔다.문제는 우연한 기회에 쉽게 풀렸다.

어느날 ‘중국여행 문화대사전’을 뒤적이다 풍혈사란에서 정선사는 풍혈사 개산조로부터 따져 ‘7조’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현재로는 그저 다음과 같은 추론을 해보고 있을 뿐이다.아직도 풀리지 않는 두보시(杜甫詩)연구의 수수께끼인 시성 두보(712~770)가 흠모한 ‘7조’가 혹시 풍혈사 정선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내본다.

두보는 말년의 2년동안을 양자강 상류인 호북성 황매 부근의 역참인 기주(蘇州)에 은거,선적(禪寂)에 잠긴채 다음의 두 구절을 포함한 장편의 선시를 남긴바 있다.‘몸은 쌍봉산(현 4조사·5조사)에 맡기고, 문(門)은 7조의 선을 추구하네. 돛을 내리고 옛날 생각을 따라,거친 베옷 입고 부처님의 참된 진리를 추구한다네’.

두보의 마음을 오간 ‘7조’.그의 시대와 경력으로 보아 7조는 북종 계통의 인물이었고,연대와 지리적 여건을 감안할 때 바로 풍혈사 7조가 아닐까 추정해 보는 것이다.

답사를 끝내고 여주 시내로 나와 저녁을 하는데 방장이 불쑥 또 한마디 한다.

원래 중국 선종은 석가모니와는 사실상 ‘메이관시(沒關係:관계없다)’라고.

증명:月下 조계종 종정·圓潭 수덕사 방장

글:이은윤 종교전문기자 사진:장충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