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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고갈의 위기…헛다리 짚은 할리우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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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부터 할리우드는 소재에 대한 압박을 받아왔다.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를 대표하던 할리우드 영화는 스토리의 단순함과 미국제일주의가 지적되며 점차 가벼운 소재로 전환한다. 1998년 영화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성공은 할리우드에 로맨틱 코메디의 열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최대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할리우드에게 로맨틱 코미디는 큰 돈벌이가 되지는 못했다. 1999년,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는 세계인들에게 할리우드가 제시한 ‘지구 종말’은 새 시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맞물려 다시 한 번 흥행돌풍을 만들었다. ‘딥 임팩트’, ‘인디펜던스 데이’, ‘매트릭스’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걸작영화가 1년 간격으로 개봉을 했고 엄청난 흥행 수익을 남겼다. 2000년대 초반, 밀레니엄을 살고 있는 세계인들에게 불안감은 사라졌고 ‘지구 종말’ 역시 흥행요소로서의 매력이 사라졌다.

또다시 소재 고갈의 위기가 할리우드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소재 고갈의 위기 속에 할리우드의 선택은 ‘속편 제작’. 과거 흥행에 성공했던 대작 영화들의 속편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터미네이터3’, ‘스타워즈 에피소드’, ‘다이하드 4.0’등 80~90년대를 주름잡았던 영화들의 속편이 화려한 컴퓨터그래픽 효과를 등에 업고 일제히 개봉을 시작했다. 그러나 진부한 스토리와 늙어버린 주연배우들의 모습은 관객들의 아름다운 추억마저 박살내는 누를 범했다.

2000년 후반 할리우드는 아시아 컨텐트 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 에니메이션은 치밀하고 기발한 스토리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충분히 끌고 있으며, 고대 중국의 신화는 동양에 대한 신비를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흥행 성적은 아직 미지수다. 일본 애니메이션 ‘마하 GOGO’를 리메이크한 '스피드 레이서'는 워쇼스키 형제가 메가폰을 잡아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지만 흥행에 실패했고, 중국 고전소설 서유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포비든 킹덤' 역시 성룡과 이연걸의 출연에도 큰 흥행은 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만화를 탄생시킨 주간잡지 ‘점프’에는 세 가지 흥행요소가 필수라고 한다. 바로 ‘우정’, ‘노력’, ‘승리’다. 다소 단순한 요소 같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주인공의 피눈물나는 노력이다. 주인공은 항상 끝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며 그의 곁에는 목숨을 같이하는 친구가 있다. 평균 5년 이상 주간물로 연재를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이 노력하는 과정은 스토리의 80%이상을 차지한다. 또한 삼국지, 서유기 등 중국 고전에는 반만년의 역사와 시대상 그리고 사상이 녹아 있다. 어찌보면 90분의 러닝타임에 그 모든 것을 담아내야 하는 할리우드의 도전은 다소 무식해 보인다. 반만년의 역사와 ‘우정’, ‘노력’, ‘승리’를 담아내야 하는 할리우드. 지금까지 자금력으로 위기를 극복해온 할리우드에게 가장 큰 강적이 탄생한 것이다.

2009년 3월. 할리우드의 대작 ‘드래곤볼 에볼루션’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도리야마 아키라의 만화 ‘드래곤볼’을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원작의 위상을 등에 업고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73권의 단행본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 고전 서유기를 바탕으로 천하제일의 무도인이 되기 위한 주인공의 노력과 우정을 담은 ‘드래곤볼’. 원작의 방대한 스토리 라인은 런닝타임에 담아내기가 어렵고 할리우드가 이해하지 못하는 아시아의 문화 요건은 두루두루 갖추고 있다. 원작의 흥행요소가 할리우드 영화로는 모두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드래곤볼 에볼루션'이 흥행에 성공하려면 게임 '바이오 하자드'를 영화 '레지던트 이블'로 재탄생 시킨 것과 같은 완벽한 스토리의 재구성이 있거나 아시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바꿔야 한다.

아시아의 컨텐트로 재도약을 선언한 할리우드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 신비롭다는 시각을 버려야한다. 사람의 삶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문화다. 5000년의 삶이 단순히 신비로움으로 탄생된 것은 아니다. 또한 아시아 문화에 대한 포용을 버려야한다. 다른 나라의 문화는 미국과 다를 수도 있다는 사고로 마음 넓은 사람인 양 포용하려 드는 것은 오만이다. 아시아의 정체성을 담은 것이 아시아의 컨텐트다. 그 컨텐트를 통해 성공을 바란다면 포용이 아닌 ‘왜’라는 의문을 가지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뉴스방송팀 강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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