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철의 수면 비타민] 자다 깬 당신, 뭔가 먹고 있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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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미혼 남성이 수면클리닉을 찾았다. 밤에 잠든 지 두세 시간 지나 잠을 깨는데 이때 음식을 먹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식욕을 참으면 공복감 때문에 자주 깨서 잘 수 없단다. 그러다 보니 수면 시간도 줄어 아침에 피곤한 것은 물론 배가 고프지 않아 식사를 거른다고 했다.

49세 중년 여성의 사례는 더 심각하다. 그녀는 2∼3년 전부터 꿈을 많이 꾼다고 했다. 잠을 자다가 오전 1∼3시쯤 음식을 먹는데 문제는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환자는 수년 전부터 우울증과 과식증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고백했다.

성인에게 하루 필요한 열량은 2000∼2500㎉다. 이 중 잠자는 동안 소모되는 열량은 80㎉밖에 안 된다. 따라서 음식을 추가로 섭취하지 않아도 저녁 식사에서 아침 식사까지 12시간 정도는 배가 고프지 않다. 결국 저녁에 과식하거나 야식을 많이 하면 잠자는 동안 칼로리가 소모되지 않아 비만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이렇게 잠자기 직전 또는 도중에 식사를 하는 것도 수면장애라고 할 수 있을까.

먼저 25세 남성의 예를 ‘야간섭취장애(Night eating disorder)’라고 한다. 정상 성인의 1.5%에서 나타날 정도로 드물지 않다. 하지만 늦은 시간에 군것질을 한다거나 식사를 건너뛰어 야식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3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이런 행동을 보일 때 의심할 수 있다. 정상인에게서도 나타나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과식증과 관련성을 보인다.

다음으로 중년 여성의 예는 ‘수면 관련 섭취장애(sleep related eating disorder)’에 속한다. 잠자는 중에 깨어나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음식을 먹거나 조리를 한다.

야간섭취장애와 달리 깨어날 때 허기져 보이지 않으며, 찾는 음식도 평소 먹던 음식이 아닌 경우가 있다. 보통 빵·파이·아이스크림·초콜릿·버터 등 탄수화물과 지방이 많이 든 음식을 찾지만, 때론 먹을 수 없는 음식, 특이한 음식을 먹기도 한다. 예컨대 매우 뜨거운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한꺼번에 먹어 목이 메는 사례도 있다.

부주의하게 음식을 조리하면서 칼에 베이기도 한다. 심한 경우 냉동식품, 조리되지 않은 스파게티, 고양이나 개 사료, 달걀 껍데기, 커피 가루처럼 먹을 수 없는 음식이나 독성 물질을 먹기도 한다. 보통 22∼29세에 시작되며, 60∼80%는 여성이다.

특히 절반에서 몽유병이 동반되며 하지불안증후군, 폐쇄성 수면무호흡증후군, 일주기장애와 같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는 수면장애가 동반된다. 다행히 이런 수면장애들은 행동요법과 약물로 잘 치료된다.

야간섭취장애는 수면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비만과 당뇨병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비만이나 당뇨병, 고지혈증이 있는 사람은 이 같은 섭취장애를 서둘러 치료받아야 한다.

신원철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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