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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치료 어디까지 왔나] 1. 폐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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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암 조기발견을 위한 저선량 CT 촬영 모습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이 바로 암이다. 우리나라 사람 네명 중 한명은 궁극적으로 암으로 숨진다. 암 발생률은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인 두명 중 한명꼴로 평생 한번 이상 암에 걸릴 정도로 흔한 병이 됐다. 그러나 암에 의한 사망률도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암 환자의 절반은 죽지 않고 생존하는 것이다. 암은 치료가 어려운 난치병일 뿐이지 불치병은 아닌 질환이 됐다. 중앙일보는 대한암학회(이사장 박찬일 서울대병원 치료방사선과 교수)와 공동으로 불치병인 암을 난치병으로 끌어내린 최신 암 치료법을 한국인에게 흔한 6대 암을 중심으로 알아본다.


▶ 폐암으로 사망한 연예인들. 왼쪽부터 이주일·이미경·율 브린너·게리쿠퍼

한국인의 생명을 가장 많이 앗아가는 암이 바로 폐암이다. 2000년 이후 부동의 암 사망률 1위였던 위암을 누르고 1위로 올라섰다. 해마다 1만여명이 폐암으로 숨진다.

코미디언 이주일씨, 탤런트 이미경씨, 전 금호그룹 박정구 회장, 전 삼성서울병원 한용철 원장 등 유명인사들이 모두 폐암의 희생자다. 폐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평균 14%에 불과하다. 그러나 치명적인 폐암도 치유의 가능성이 조금씩 엿보이고 있다. 폐암 정복을 앞당기고 있는 첨단 치료 세 가지를 소개한다.

◇저선량 CT=수술은 완치를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1기에 발견할 경우 수술로 60~80%에서 완치할 수 있다. 문제는 전체 폐암 환자 네명 중 세명은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뒤늦게 발견되는 것. 위암의 내시경처럼 효과적인 조기발견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도입된 저선량 CT를 이용할 경우 수술할 수 있는 1.2기에 발견할 수 있다. 저선량 CT란 일반 CT 방사선량을 5분의 1가량 줄여 만든 장치. 아프지 않고 10분 남짓이면 끝난다. 대부분의 대학병원에 설치돼 있으며 비용은 10만원 정도.

검사시기에 대한 학회의 공식적인 가이드라인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지만 40대 중년 이후 흡연자는 2~3년에 한번꼴로 검사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첨단 항암제=수술이 불가능한 폐암 환자에겐 이레사 등 첨단 항암제가 도움이 된다. 이레사는 암세포만 공격하고 정상세포는 손상시키지 않는 표적 항암치료제. 구토와 탈모 등 부작용이 거의 없다. 미국 식품의약국의 공인을 거친 아스트라제네카의 신약으로 국내 의료계에도 올해 4월 정식으로 시판됐다. 3기 이상 수술이 불가능한 폐암으로 시스플라티눔이나 탁솔 등 기존 항암제를 투여해도 효과가 없는 환자에게 투여한다.

대한암학회 폐암분과위원회 위원장인 삼성서울병원 종양내과 박근칠 교수는 "이레사의 출현으로 기존 항암제 치료로 실패한 폐암 환자도 생존기간의 연장이 가능해졌다"며 "투여환자의 25~30%에서 폐암 크기가 줄었으며 전체적으로 40~55%가 암이 더 자라지 않는 효과가 관찰됐다"고 설명했다.

이레사 이외에도 탈세바(로슈)와 세툭시맵(MSD) 등 비슷한 효능을 지닌 신약들이 임상시험 중이며 내년 중 국내에서 시판될 예정. 박 교수는 "3기 이상 폐암의 경우 암을 뿌리뽑기보다 암이 더 증식하지 않도록 약물로 다스리는 것이 원칙"이라며 "수술 불가능한 폐암은 암세포와 가능하면 오랫동안 '더불어 살아간다'란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생존기간을 늘려가면서 첨단치료의 출현을 기다려보자는 것. 박 교수는 "90년대 초만 해도 말기 폐암환자의 생존기간은 평균 6개월이었으나 지금은 웬만하면 1년은 거뜬히 넘긴다"고 말했다. 실제 말기폐암을 진단받은 이주일씨도 2년 남짓 생존했다.

◇방사선 수술=방사선을 쪼여 수술칼처럼 폐암 덩어리를 정교하게 도려내는 방사선 수술치료도 최근 각광받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최은경 교수팀이 선보인 SRS(체부정위 방사선 수술)치료가 대표적이다. 폐는 호흡을 위해 항상 움직이기 때문에 방사선 치료가 어려웠다. 그러나 폐를 정위 방사선 고정장치란 특수장비를 통해 고정시키고 선형가속기를 통해 3차원적으로 종양 덩어리에만 방사선을 선택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SRS다.

최 교수는 "오차의 범위를 2㎜ 이내로 정교하게 유지할 수 있어 폐기능이 떨어져 수술이 불가능한 폐암 환자, 폐의 움직임이 커 기존 방사선 치료가 어려운 환자, 다른 부위에서 암이 생겨 폐로 전이된 환자에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팀이 98년 이래 100여명의 폐암환자에게 이 치료를 적용한 결과 86%에서 종양 크기가 절반 이상 줄었으며, 2년 동안 재발 없는 생존율도 81%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으며 환자 본인부담금은 200만~270만원. 최 교수의 방사선 수술 치료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6월 하버드의대에서 결과를 발표하고, 10월 미국 방사선종양학회에선 특별주제로 선택됐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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