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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임금동결.능력급 시대 근로자의식 변화 - 알뜰작전 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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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두산음료에 근무하는 金모(35)과장은 지난해말 인사고과에서 C를 받아 올 연봉이 A를 받은 동료에 비해 1백만원이나 적은 1백30만원(인상률 4.6%)만 오르는데 그쳤다.

연봉제가 실시된 94년 이후 그의 1년'일값'(현재 3천만원)은'아주 잘나가는'동기에 비해선 3백만원 이상 벌어져 있다.

金과장은“지난해엔 B라도 받기 위해 밤늦게까지'몸으로 때우다'몸무게도 5㎏이나 빠졌다”며“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이 회사는 그래도 연봉이 줄어드는 경우는 없지만 지난 1월부터 최고 20%까지 감급(減給)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효성생활산업의 직원들은 더 고달프다.

이 회사의 李모(36)과장은“연말의 연봉협상에 내놓을 업적 관리와 동료들간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까지 있다”고 말했다.올들어 거세게 불어닥친 불황 한파와 대기업의 임금동결에 밀려 지난 3월부터 수당등이 깎인

한 중소가구업체 蔡모(40)부장은'구두쇠 가장'이 됐다.

월급이 오히려 20만원 줄어든 그는 출퇴근시 자가용 사용도 중단했고,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개인 가계부'를 부인과 함께 쓰는데다 부인의 취업까지 생각하고 있다.

蔡부장은“지난해 명예퇴직을 하고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한 동료들에 비하면 낫다고 생각하지만 애들 교육등에 대비해 맞벌이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지난해의 명예퇴직 바람에 이어 올들어 임금동결과 연봉제 확산이 맞물리면서 기업과 사회의

패러다임(틀)까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28대 그룹중(96년기준 30대 그룹중 한보.삼미 제외)15개 그룹이 이미 연봉제를 도입했거나 도입할 계획이다.

더욱이 새 노동법에 따라 당장 변형근로제가 가능하고 정리해고도 먼 일이 아니어서 이같은 현상이 속도를 더하고 있다.

직장에 한번 들어가면▶정년까지 다니고▶월급은 동기들과 같이 받으며▶직급도 차차 올라간다는등 너무나 당연시해온 관행들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다.

또 경제의 몸집은 계속 불어나고 월급은 오르기만 한다는 신화도 사라져 근로자들의 생활방식과 의식도 탈바꿈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유경준(兪京濬)연구위원은“연공서열등이 무너지면서 직장인들이 온실에서 경쟁터로 나가고 우리 사회의 틀도 경쟁사회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이에따라 이미 직장에서의 가치관은 과거의 온정주의에서 개인주의로 U턴했고 사

회 전반적으로도 여유가 줄어들고 경쟁의식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또 미국의 경우 연봉제등의 결과로 나타난 현격한 임금소득 격차와 사회병리현상등의 사회문제가 우리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변형근로제가 실시되면 밤중에 주로 근무를 한다거나 휴무하는 날이 많아지게돼 라이프 스타일도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오르기만 했던 월급이 묶이거나 오히려 줄어들면서 가장들은 가계부와 생존전략의 시나리오를 다시 짜고 있다.

대부분의 가정은 외식이나 사교육비를 줄이고 있고,퇴근후 부업을 하거나 맞벌이에 나서는 경우도 늘고 있다.퇴근후에 외국어학원이나 자격증 전문학원에 직장인들이 몰리는 것이나 창업스쿨이 북적거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임금동결이나 감원.변형근로제등은 우리 경제가 개방되면서 세계 초일류 기업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해야 하지만 높은 임금.물가.금리.땅값등 가운데 기업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이것들 뿐이라는 배경이 깔려 있다.

포스코 경영연구원의 李영호 연구위원은“우리 경제의 개방화가 가속화될수록 근로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인사제도의 변화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능력주의에 걸맞은 직장관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열.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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