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공포증 정서장애 유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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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시험은 나를 죽이는'병'같다.시험때가 다가오면 갑자기 가슴이 뛰기도 하고 소화가 안된다.한번은 시험 시작종이 울리자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며 온몸이 마비된듯 꼼짝할 수 없었다.잠시후 손발엔 감각이 돌아왔지만 공부한 내용은 하나도 기

억나지 않았다.”여고 2년생 박모(17)양의 얘기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험에 대한 공포로 몸과 마음이 짓눌린채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초.중.고 과정 전체가 대입을 위한'입시학원'이 되면서 시험성적만으로 학생들의 가치가 평가되는 현재의 교육풍토 때문에 정도차는 있지만 거의 모든 아이들이 시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태.'시험공포증' 또는'시험불안증'등으로 불리는

이같은 스트레스는 두통.복통.현기증.설사등 신체적 이상은 물론 열등감.우울증,심한 경우 자살충동까지 이르는 정서적 장애를 일으키는게 보통이다.실제로 지난해 교육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중.고생 자살이 크게 늘고 있으며(94년 96명

→95년 1백88명) 이중 성적비관이 원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현상은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인도에서도 성적향상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다 자살한 학생들이 95,96년 2천여건에 달한 것으로 최근 집계됐다.

연세대 교육학과 한준상 교수는 시험공포증이“시험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 시험결과.준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부모.친구.교사등과의 인간관계의 갈등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한다.시험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친구가 경쟁상대로 전락해버린데 따른 상실감,점수로만 자신을 평가하는 교사에 대한 불만이 시험을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성적에 따라 공개적인 체벌과 질책을 가하는 일부 교사들의 행동은 학생들에게 이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부정행위등 옳지 못한 수단까지 동원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게 한다.

삼성의료원 정신과 정유숙 전문의는“우선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부모들부터 인식을 달리해야 한다”면서“시험전에 아이가 화장실에 자주 가고 손이 떨린다는등 신체적 이상을 호소한다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또 이런 신체적

이상과 정서적 위축을 동반한 성적저하현상이 나타나면 아이를 닦달하기에 앞서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해 부모가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는게 그의 조언.

한편 한양대 정신과 안동현 교수는“시험현장에서 극심한 공포로 진정이 안될 경우엔 눈을 감고 편안히 뒤로 기댄 자세에서 넷을 셀 동안 코로 숨을 들이쉬면서 의도적으로 배를 부풀렸다가 여덟을 세는 동안 입으로 내쉬며 배를 밀어넣는 심호흡을 수차례 되풀이하면 효과가 있다”고 응급처치요령을 소개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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