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수대>홍길동을 찾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조선조에는 유난히도 큰 도둑들이 많았다.연산군때 가평.홍천의 홍길동(洪吉同),명종때의 양주 백정 임꺽정(林巨正),선조때 충청도 일대를 장악한 이몽학(李夢鶴),광해군때의 서양갑(徐羊甲)등이 대표적이다.그중 허균(許筠)과 친했던 인물

이 서양갑이다.서자(庶子)출신이었던 그는 같은 처지의 6명과 함께'소양강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는 패거리를 만들어 강도짓을 일삼다가 마침내 나라를 뒤엎을 궁리까지 하게 된다.모의가 사전에 발각되는 바람에 서양갑 일당은 처형당하거니

와 이들과 꽤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허균은 재빨리 권력층에 달라붙어 화를 면한다.

최초의 한글소설'홍길동전(洪吉童傳)'이 허균의 작품이 아닐 것이라는 학설도 여러차례 제기됐지만 소설속에서 부패한 귀족계급을 응징하는 홍길동의 행적이 서양갑 일당의 그것과 꽤 닮아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그렇기 때문에'홍길동전'이 허

균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각색 등 최소한의 간여는 했을 것이라는 학계 일부의 주장은 꽤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허균의 작품이든 아니든 이 소설을'사회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사회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 없다는 관점은 홍길동이 부패한 관리로부터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회

정의를 위한 싸움이라기보다 푸대접받고 출세길이 막혀버린 불운한 서자의 불만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데서 비롯한다.말하자면 홍길동의 고뇌는 가난하고 비천한 신분의 무력한 민중들의 고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니 사회성은 약할 수밖에 없

다는 논리다.

하지만 홍길동의 의도(義盜)행각은 당대의 부패한 관리에게 저항하고 민중을 도와주며 약하고 억울한 민초들의 한을 풀어준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의 영원한 영웅으로 추앙받는다.도둑질은 악(惡)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도둑질은 불의에 대한 응

징이기 때문에 묻혀버리고 만다.

강릉시는 허균의 친가.외가가 모두 강릉이었다는 점에 착안해 홍길동을 시의 상징으로 세우고 이미지 제고에 나섰다.우선 홍길동의 캐릭터를 상품화하기로 하고 상징 로고와 마스코트 도안을 현상공모하고 있다.'부패한 귀족계급'이 여전히 문

제가 되고 있는 때인만큼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