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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골 어시스트한 ‘라이트 윙’ 조해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3호 11면

한나라당 조해진(45) 의원은 주 2회는 축구장을 누비는 축구 매니어다. 그의 축구 인생은 그의 정치 인생과 함께 변해 왔다. 1992년 박찬종 전 의원 보좌역으로 정치에 입문해 국회 보좌진 축구단에서 뛰었고, 2002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보좌역을 맡으면서 한나라당 사무처 축구단에서 활약했다. 초선 의원인 지금은 국회의원 축구연맹의 간판 선수다.

포지션은 언제나 라이트 윙이다. 하프라인 부근을 맴돌며 수비와 공격을 같이 한다. 주로 골문 앞에 있는 골게터에게 찬스를 만들어 주는 역할이다. 열심히 뛰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많고 남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그런 역할 말이다.

그의 정치적 포지션도 줄곧 남을 어시스트하는 라이트 윙이었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11년 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정무 특보를, 당내 경선과 대선 때는 공보특보와 PR팀장을 맡았다. 박찬종·이회창·이명박 세 골게터의 오른쪽 날개로 15년을 쉼 없이 달리다 지난해 말 마침내 우승 골을 어시스트한 것이다.

조 의원에게 좋아하는 축구 선수를 묻자 몇몇 이름을 꼽는 대신 “지칠 줄 모르고 뛰는 사람, 찬스에 능한 사람, 순발력·민첩성·정확성을 가진 사람, 패스 잘하고 남을 배려해 주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그가 지향하는 정치인 상(像)에 대한 대답처럼 들렸다.

조 의원의 학생 때 별명은 ‘탱크’와 ‘불도저’. 상대 선수가 움칫 몸을 피할 만큼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축구 스타일 때문이었다. “제가 들어가면 상대팀에 한 명을 더 얹어서 11대12로 축구를 할 정도였어요.” 그가 기분 좋게 웃었다.

‘온화하고 예의 바른 것으로 유명한 걸 보니 정치 스타일은 불도저가 아닌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지금까지 정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도저 기질이 아닐까요”라고 반문한다.

초등학생 때 생활보호대상자였을 정도로 “돈도 ‘빽’도 없었지만” 서울대 법대 3학년 때 정치를 평생의 업으로 정한 뒤 줄곧 외길을 걸었다. 고생으로 가득한 길이었다. 박 전 의원을 보좌하며 서울시장과 대선 후보 경선, 보궐선거 낙선을 거푸 겪었고 이 전 총재를 보좌하며 대선 실패를 경험했다. 2005년에는 5개월간 카드 대출과 현금 서비스로 버텼을 만큼 생활고도 겪었다. 하지만 한순간도 정치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내면의 불도저’ 때문이란다. 17대 때 경남 밀양-창녕 공천에서 떨어진 뒤에도 지역 사무실을 계속 관리해 오다 결국 18대에 당선된 것도 이런 기질 덕분일 것이다.

‘골게터들의 오른쪽 날개’는 이제 자기 정치를 시작했다. ‘조 의원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기자의 지적에 그는 “헛발질이 아니라 결정골을 터뜨리고 싶다. 큰 흐름에 영향을 못 주는 반짝 발언은 지양한다”고 말했다.

6개월 된 초선 의원은 아직 하프 라인을 맴돌고 있다. 하지만 언제 불도저처럼 밀고 올라가 몸으로 밀어서라도 골을 넣을지 모른다. 그는 이달 초 의원축구연맹 정기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골 넣는 라이트 윙’으로의 변신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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