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대형사건 여파로 기업들 자금조달 비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경기불황과 한보.삼미 부도등 대형사건의 여파로 기업들의 자금난이 갈수록 악화되며 자금조달에 비상이 걸렸다.기업들은“자금사정이 어렵다고 소문나면 제2금융권에서 즉각 대출을 회수하는 것은 물론 은행까지도 대출규모를 줄이려 한다”고 걱정이다.기업들은 특히 이같은 상황이 장기화될까 우려하고 있다.“한보.삼미 부도때문에 기업들이 외화대출을 시도해도 규모가 1천만달러만 넘어가면 외국 금융기관의 대출 신디케이트 구성이 잘안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쌍용그룹 계열사 자금담

당인 K이사의 하소연이다.국내 30대기업마저 펑펑 나자빠지는 상황이라 우리나라의 컨트리리스크(국가위험도)가 크게 나빠진 때문이라는 것이다.국내에서의 자금사정은 이보다 훨씬 어렵다.내수부진으로 재고는 쌓이고 대출은 물론 직접금융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종합금융회사의 기업어음(CP)금리가 연14%에 육박하는등 금리도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한화그룹의 P사장은“과거에는 30대그룹의 경우 신용도가 웬만큼 인정돼 자금을 돌리는데 여유가 있었으나 이제 은행들이 10대그룹도 안심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그는“한보.삼미등 부도회사들의 융통어음이 통상 3개월짜리인데 이것이 돌아오기 시작하는 4~5월께 금융계에 혼란이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의 L전무는“주가가 엉망이라 기업의 유상증자도 어려워졌다”면서“채권발행등 직접금융까지 크게 악화됐다”고 걱정했다.

대우그룹 계열사의 자금담당 L이사는“기업들이 자금경색을 우려해 자금을 미리 확보하려는 가수요 현상까지 일어날 조짐이어서 하반기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자금확보가 갈수록 더 어려워질 전망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실물부문에서도 발생한다.현대 L전무는“자금도 문제지만 내구재 수요가 살아나지 않는게 문제를 확대시킨다”면서“재고가 쌓인다고 자동차 생산을 중단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실제 많은 대기업들은 올들어 매출실적이 목표치에 미달한다고 하소연한다.기업들은 이때문에 신규투자 축소나 투자를 연기하는 사례가 더 많아질 것으로 보고있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더하다.

서울 영등포의 골판지업체인 D사는 거래처에서 받은 진성어음을 두달째 할인하지 못해 직원 봉급도 주지 못하고 있다.이 회사 L사장은“요즘은 은행은 물론 2금융권조차 중소기업 어음을 거들떠보지 않는다”며“은행문턱이 높은게 아니라 아예

폐쇄된 느낌”이라고 말했다.정부의 긴급자금 방출도 중소기업들에는 그림의 떡.“한보때 나온 긴급지원 자금은 대부분 금융권에 머물렀다.금융기관들이 준법대출을 적용해 담보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은 그 돈을 못쓰고 있기 때문이다.”(쌍용L이사,삼성 C부장) 〈박영수.고윤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