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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 시시각각

바닥을 겁내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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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뜻밖에도 문화재단지 안의 고가(古家)가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다. ‘문화재’라는 단어가 어색할 정도였다. 두말할 것도 없이 거의가 어릴 때 살고 쓰던 집 구조요, 물건들이었기 때문이다. 내 또래 이상의 연배라면 누구나 같은 느낌을 받았으리라. 쟁기·고무래·삼태기·다래끼·종다래끼·망태기·도롱이에서 오줌장군과 안방에 턱 놓인 사기 요강까지, 정겨웠다. 탈곡기와 씨아(목화씨를 빼내는 기구)도 오랜만에 보는 물건이었고, 누에를 치던 집이었는지 섶이랑 잠박도 전시돼 있었다.

고가의 부엌 아궁이에서는 지금도 매캐한 연기 내음이 나는 듯했다. 그랬다. 솔가지와 장작을 때다 어느 시점엔가 연탄 아궁이로 바뀌었다. 나는 지금 기름 때는 집에 산다. 고가의 도구들은 대부분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에서 나왔다. 공장 물건은 드물다. 그만큼 결핍의 시대, 내핍의 시대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십대에 갓 들어선 나도 생활도구에 관한 한 문화재와 첨단을 두루 경험하지 않았는가. 압축성장의 사례는 멀리서 찾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 시대에 한국전쟁까지 겪은, 더 연세 드신 분들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돈을 찾으러 시골 단위농협에 들렀다. 자그마한 사무실 창구 옆에 알사탕이 소복이 놓여 있었다. 공짜 서비스용이다. 한 쪽엔 무료 커피 자판기도 있었다. 저 알사탕이 옛날엔 얼마나 선망받았던가. 세계적인 뇌영상 과학자인 조장희(72·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박사의 회고록이 떠올랐다. 그는 62년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 유학갔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엘리베이터와 커피 자판기, 인기척이 나면 자동으로 켜지는 복도등, 더운 물이 나오는 샤워기…. 모두 처음 대하는 것들이었다. 한국은 나무들이 땔감으로 잘려나가 대부분 민둥산인데, 스웨덴은 온통 빽빽한 숲 천지였다. 강의실마다 필기구를 비치해 학생들이 공짜로 쓸 수 있게 한 것도 놀라웠다. 조 박사가 스웨덴에 가는 데 든 항공료는 550달러였다. 그런 거금(?)을 들여 해외에 가기 때문에 국무총리의 출국 결재를 받아야 했을 정도로 당시의 한국은 가난했다.

 많이 쓰이는 영어로 ‘Been there, done that’이라는 말이 있다. ‘I have been there, I have done that’을 줄인 표현이다. 말 그대로 ‘거기에 가 보았고, 해보았다’는 뜻이다. 현장을 충분히 목격한 데다 온몸으로 겪어도 보았다는 말이다. 한국의 기성세대야말로 ‘Been there, done that’ 세대다. 식민지에, 전쟁에, 산업화 시대 일중독에, 민주화 열망에, 게다가 10년 전 혹독한 외환위기까지 현장마다 가 있었고 빠지지 않고 체험한 세대다. 만만치 않은 내공이 몸에 배어 있다. 문화재급 유물에서 시작해 첨단 제품까지 잘 적응한 사람들이다. 젊은이들이 ‘88만원 세대’ 운운하며 상대적 빈곤과 취업난을 호소하지만, ‘가 보았고 해 본’ 기성세대가 겪은 적빈(赤貧)과는 비교가 안 된다. 기성세대가 예전에 경험한 바닥보다 더한 바닥은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떤 바닥도 두렵지 않다.

경제위기의 끝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쯤이 바닥일지 감 잡기도 힘들다. 그러나 바닥을 겁낼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다. 특히, 숱한 고난으로 단련된 기성세대가 이번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노재현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