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맛인 곳이 식품업계다. 과거엔 보이지 않거나 측정이 불가능해 알지도, 찾아낼 수도 없었던 vCJD(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나 노로바이러스, 다이옥신 등까지 신경써야 하기 때문이다. “식품에서 발암물질이 일체 검출돼선 안 된다”는 ‘델라니 경구(Delaney clause)’를 미 식품의약국(FDA)이 슬그머니 용도 폐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분석화학의 발달로 실체가 드러난 대표 유해물질은 최근 아일랜드산 돼지고기 파문의 주범인 다이옥신(dioxin)이다.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은 먹이사슬의 위쪽(최종 소비자 방향)으로 갈수록 더 많이 검출된다. 전문용어로 생물농축(bioaccumulation)이라고 한다. 물→플랑크톤→작은 물고기→큰 물고기→사람 순서로 오염량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사람 중에서도 엄마 젖을 먹는 아기가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다. 아일랜드나 99년 벨기에산 돼지고기 다이옥신 오염사고 같은 인재(人災)가 아니라면 우유보다 모유에서 다이옥신이 더 많이 검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돼지고기의 다이옥신 규제 기준(2pg TEQ/g fat)을 모유에 적용한다면 이 기준을 통과할 모유는 거의 없다. 서울 강남 지역 병원에서 채취한 모유(초유)의 다이옥신 검출량이 평균 31.7pg TEQ/g fat이었다는 국내 조사 결과(99년)도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나서서 모유 먹이기를 권장하는 것은 다이옥신 등 오염물질에 의한 실보다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기고 면역증강 물질이 든 모유의 득이 훨씬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정부가 돼지고기를 리콜한 지 나흘 뒤,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15쪽짜리 ‘아일랜드산 돼지고기 위해도 평가 보고서’를 내놓았다. ‘오염이 가장 심한 돼지고기(200pg TEQ)를 오염 기간 내내(90일) 먹었다 해도 건강엔 문제가 없다’는 명쾌한 결론보다 신속성이 더 부럽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