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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다이옥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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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극미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지적 호기심은 끝이 없다. 도구의 발달이 탐구욕을 채워준다. 바이러스나 프리온은 전자현미경으로, 극소량의 화학물질은 GC-MS나 HPLC-MS 같은 분석장비로 탐색한다. 현재 40대 이상은 ‘마이크로(micro· 100만 분의 1) 탐험대’라는 영화를 보며 신기해 했다. 1990년대엔 나노(nano· 10억 분의 1)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2000년대엔 피코(pico· 1조 분의 1)까지 낯설지 않게 되었다.

죽을 맛인 곳이 식품업계다. 과거엔 보이지 않거나 측정이 불가능해 알지도, 찾아낼 수도 없었던 vCJD(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나 노로바이러스, 다이옥신 등까지 신경써야 하기 때문이다. “식품에서 발암물질이 일체 검출돼선 안 된다”는 ‘델라니 경구(Delaney clause)’를 미 식품의약국(FDA)이 슬그머니 용도 폐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분석화학의 발달로 실체가 드러난 대표 유해물질은 최근 아일랜드산 돼지고기 파문의 주범인 다이옥신(dioxin)이다.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은 먹이사슬의 위쪽(최종 소비자 방향)으로 갈수록 더 많이 검출된다. 전문용어로 생물농축(bioaccumulation)이라고 한다. 물→플랑크톤→작은 물고기→큰 물고기→사람 순서로 오염량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사람 중에서도 엄마 젖을 먹는 아기가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다. 아일랜드나 99년 벨기에산 돼지고기 다이옥신 오염사고 같은 인재(人災)가 아니라면 우유보다 모유에서 다이옥신이 더 많이 검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돼지고기의 다이옥신 규제 기준(2pg TEQ/g fat)을 모유에 적용한다면 이 기준을 통과할 모유는 거의 없다. 서울 강남 지역 병원에서 채취한 모유(초유)의 다이옥신 검출량이 평균 31.7pg TEQ/g fat이었다는 국내 조사 결과(99년)도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나서서 모유 먹이기를 권장하는 것은 다이옥신 등 오염물질에 의한 실보다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기고 면역증강 물질이 든 모유의 득이 훨씬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정부가 돼지고기를 리콜한 지 나흘 뒤,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15쪽짜리 ‘아일랜드산 돼지고기 위해도 평가 보고서’를 내놓았다. ‘오염이 가장 심한 돼지고기(200pg TEQ)를 오염 기간 내내(90일) 먹었다 해도 건강엔 문제가 없다’는 명쾌한 결론보다 신속성이 더 부럽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