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수능 방송' 성급한 판단 말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지난 4월 초 시작해 비교적 순항하는 듯 보였던 교육방송 수능강의가 최근 일부로부터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그 핵심은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일환으로 나왔던 교육방송 수능강의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교사와 학생.학부모를 상대로 실시한 유관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육방송 수능강의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효과에 대해 세 집단 모두 회의적 반응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서울 시내 입시.보습학원과 개인 과외교습소의 숫자는 2.17 사교육비 경감대책 발표 이전에 비해 오히려 늘어났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조사 결과는 평소 전교조와 대척점에 서 있던 보수적 입장에 의해 적극 활용되는 측면이 있다. 일부 언론은 학생과 학부모들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컴퓨터 및 가전업계 중심의 경제적.상업적 효과만 나타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로써 양자는 자칫 교육방송 수능강의 무용론으로 합류할 태세다.

하지만 교육방송 수능강의에 대한 총체적 평가는 현 단계에서 성급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물론 입시문제가 명실상부한 전 국민적 관심사인 현실에서 새로운 제도와 방식의 도입이 초래할 효과에 대해 궁금증이 클 수밖에 없는 사정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평가작업은 보다 체계적으로, 그리고 신중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 사설 학원 숫자가 줄지 않았다는 것으로 사교육비 경감효과 부재를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선 불과 한달여 만에 학원을 열고 닫는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학원 숫자의 증가 폭도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더욱이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학원 수와는 무관하게 학원 수강생 수는 4월 이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교육방송 수능강의에 대한 서울 중심적 혹은 강남 편향적 분석도 지양해야 한다. 5월 초 교육인적자원부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교육방송 수능강의 이후 사교육비 절감현상은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대도시 지역이 아닌 군 지역에서 그 효과가 특히 두드러졌다. 이는 교육방송 수능강의가 지역 간 교육 격차 해소에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서울에만 사람이 사는 것도 아니고 강남 학생만 좋은 대학에 가란 법도 없다면 입시교육에 관한 최소한의 기회 균등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와 아울러 교육체계 혁신이라든가, 입시제도 개선 등을 주장하며 교육방송 수능강의 자체를 근원적으로 비판하는 일은 당위성에 비해 현실감각이 떨어진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입장도 교육방송 수능강의가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일종의 '해열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프로그램과 교재 제작시 현직 교사를 참여시키고 흥미 진작을 위해 공개강의 방식을 도입하는 등 교육인적자원부는 후속 보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 만큼 '전부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식의 인식은 최소한 지금 단계에서는 적절한 것이 아니다.

달리는 자동차를 멈춰 세운 다음 정비하듯 추진할 수는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을 다루는 교육정책이다. 한편으로 자동차는 계속 달리고 다른 한편으론 고장난 곳을 찾아 고쳐야 하는 것이 주어진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문제투성이고 입시가 사고뭉치라는 것을 누가 모르랴. 그럴수록 경계해야 할 것이 특정 정책에 대한 단기적.일면적 평가다. 올 가을 수능고사 때까지, 아니면 최소한 6월 초 모의고사 때까지만이라도 일단은 기다려보자. 원래 교육은 기다리는 것이다.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