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부도쇼크>삼미그룹은 어떤회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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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법정관리 신청에 들어간 삼미그룹은 한때 세계 최고의 특수강업체를 꿈꿨던 재계서열 26위(96년 자산기준)의 특수강전문 그룹이다.

6개 계열사에 종업원수는 4천5백명(포철에 창원공장 매각후엔 2천4백여명),96년 그룹 매출은 1조5천억원이다.

창업주 김두식(金斗植.80년 작고)전회장이 6.25직후인 54년 무역업으로 출발한뒤 70년대 창원공단에 특수강 공장을 건설했다.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특수강산업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3공시절 방위산업체로 지정되는등 고속성장가도를 달렸다.

삼미는 60년대 서울관철동에 당시로서는 초고층인 31층짜리 삼일빌딩을 지어 재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80년 창업주인 金회장이 작고한뒤 장남 김현철(金顯哲.47)회장이 30세의 젊은 나이에 경영대권을 이어받았다.그러나 경영상의 한계를 느낀 金회장이 95년말 캐나다로 떠나며 동생인 현 김현배(金顯培.39)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삼미는 김현철 회장 취임직후인 80년대초 2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당시 주력이었던 해운경기가 가라앉으며 계열사를 13개에서 5개로 줄이고 삼일빌딩과 프로야구단까지 처분하는등 자구노력을 벌여야 했다.

80년대 후반 3저호황을 타고 계열사를 다시 14개로 늘리면서 특수강을 새 주력으로 삼아 설비 신.증설에 나서는등 공격경영을 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특수강 공급과잉등으로 적자가 계속되자 8개 계열사를 잇따라 매각,통폐합하는등 2차 자구노력을 벌였다.

김현배회장은 30대그룹 총수중 한보그룹 정보근(鄭譜根.34)회장에 이어 가장 젊은 재계 총수.한보와 삼미스토리는“창업보다 수성(守成)이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민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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