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당나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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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하늘엔 용 고기, 땅엔 당나귀 고기(天上龍肉, 地上驢肉)’. 미식가인 중국인들이 하는 말이다. 용이 정말 있어 그 고기를 맛봤는지는 차치하고, 당나귀는 부드러운 육질로 현대의 중국인에게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죽은 고기에 대한 예찬에 불과하다. 실제 당나귀의 인상은 중국에서도 좋지 않다.

당나귀가 부리는 고집이 마땅찮은 것이다. 당나귀 주둥이를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으로 비유하거나, 그 행태의 일부를 옮겨다가 사람의 ‘간악한 심성’에 빗대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당나귀를 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 ‘못된 당나귀 생원님 업신여긴다’는 속담이 있다. 제 못난 것은 헤아리지 않고 남을 함부로 깔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어쨌거나 말을 닮았지만 여러모로 그에 미치지 못하는 당나귀는 품격이 낮은 사람과 행위를 비꼬는 데 쓰인다.

서양에서의 당나귀는 우둔함과 고집스러움의 대명사다. 이솝의 우화에 등장하는 당나귀가 대표적이다. 소금을 등에 실은 당나귀가 개울을 건너다 물에 빠져 짐이 가벼워진 데 착안해 그 행동을 반복했다는 얘기다. 잘 알려져 있는 이 스토리의 결말은 짐을 운반해야 하는 본래의 목적을 따지지 못하는 당나귀에 대해 주인이 징계를 내리는 것으로 맺어진다.

당나귀가 억울하겠다. 사람을 위해 무거운 짐을 끌어주는 수고를 마다 않는 덕성을 갖췄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사람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약점이 많이 잡혔다. 쓸데없이 부리는 고집,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우둔함의 상징으로.

요즘 한국에도 당나귀가 제법 보인다. 여론의 비난이 들끓는데도 과거의 행태만을 반복하는 정치권이 딱 그 모습이다. 국가가 맞은 위기가 머리에 닥치는 데도 이들의 행동은 나아지지 않는다. 엊그제 발표된 한 여론조사가 이를 잘 반영한다. 하찮은 다툼에만 몰두하는 여야에 대해 ‘잘못 한다’는 평가가 각각 65.1%와 71.3%로 나타났다. 정치 혐오증이 본격적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주인의 의중을 못 읽는 당나귀. 이솝 우화에서처럼 당나귀 등짐의 내용을 소금에서 솜으로 바꾸면 좀 나아질까. 한국의 정치인들은 행여 집권에 성공한 미국 민주당의 상징이 당나귀라는 점을 위안 삼지 말라. 방향과 목표를 제대로 잡은 그 당나귀는 우직한 일꾼. 그대들과 전혀 다르니까.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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