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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생존의대변혁>下. 구조조정의 속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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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두산그룹의 최근 분위기는 비장할 정도다.변혁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임직원들도 공감하고 있다.그러나 구조조정작업 초기에는 구체적인 방법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어야 했다.

그룹차원에서 추진중인 부동산.주식매각등 구조조정에 대해“너무 잘라내는 것 아니냐”는 일부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이에따라 박용오(朴容旿)회장은 최근 전국 지방사업장을 돌며“그룹의 뿌리부터 바꾸자.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구조조정의'전도사'로 발벗고 나서 임직원들의 공감대를 구할 수 있었다.기업들이 사운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

정작업은 말이 쉽지 실제론 지난(至難)한 작업이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일부 가전사업을 해외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중이나 수천명에 달하는 국내 인력을 소화할 사업장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그는“대리점과 협력업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법적 제소문제까지 들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특히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본의아니게 중소기업에 치명적인 상처를 줘 그룹이미지의 추락까지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한 전자회사는 가전제품 매장의 구색용으로 다리미등 소형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납품받아 왔으나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아래 이 사업을 폐쇄했다.이 때문에 독자적인 유통망을 확보할 여력이 없는 협력업체들이 시위를 하는등 거세게 반발했다.구조조정의 가장'뜨거운 감자'는 인력감축과 인력재배치다.

거평그룹은 95년 한계사업으로 분류한 가죽신발(革靴).인조가죽사업부를 떼어내느라 5개월 가까운 진통을 겪어야 했다.노조와의 마라톤협상 주제는 1백50명에 가까운 단순노동인력의 처리방안이었다.이들을 흡수할 마땅한 계열사가 없었다.관

련 노조원들의 거센 반발로 그룹 빌딩앞에선 노조원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결국 그룹이 생산시설 대부분을 그들에게 공짜로 넘겨주고 일정액의 위로금도 퇴직금에 얹어주는 조건으로 가까스로 적자사업을 떨어낼 수 있었다.

삼성그룹은 올해 29개 사업,매출 1조원 규모의 한계사업을 정리할 방침이다.

이에따라 발생할 잉여인력은 약 3천명.삼성은 인력조정이 행여 탈락자나 부적격자를 추려내는 편법으로 변질될 소지를 막기 위해 사전에 명확한 조정기준을 만들어 사원들에게 통보하고,전환배치되는 인력은 우수인력 위주로 선발한다는 원칙을

마련했다.

또 불이익이 없도록 당사자 의견을 최우선 존중한다는 방침이다.그러나 사업구조의 큰 그림을 바꾸는 마당에 임직원 개개인의 고충을 모두 수용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워 계열사마다 인사담당자들이 고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최근 지원부서의 우수인력들을 대거 영업직으로 전진배치하면서 진통을 겪었다.일부 간부들이 자신의 부서인력은 내줄 수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사장이름의 공문을 보내고서야 매듭을 풀수 있었다.

누가 구조조정의 총대를 메느냐도 중요한 문제다.아무리 작은 사업이라도 그 사업에서 손을 떼는 일은 전문경영인이 결정하기 어렵다.두산이 그룹의 태생지인 영등포 맥주공장 부지를 팔기로 결정할 때는 오너회장조차 임직원들의 사기를 걱정했

다고 한다.구조조정은 특히 위험부담을 안고'선택과 포기'를 해야 한다.따라서 전문경영인들은 오너의 결심을 기다리며 눈치를 보는게 일반적이다.

일률적인 임금체계와 노조의 경직성도 구조조정의 걸림돌이란 지적이 있다.한국경제연구원 곽만순(郭晩淳)박사는“반도체와 같은 고부가가치 업종에 근무하는 인력과 단순노동 근로자들의 임금체계가 똑같은 것도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구조조정엔 내부의 걸림돌만 있는 것이 아니다.정부의 각종 규제가 곳곳에 버티고 서 있다.현대그룹이 제철사업 진출을 통해 중공업과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꾀하려고 했지만 정부는 불가(不可)입장을 견지하고 있다.정부가 신규사업 진출,기업 인수합병,계열사 통폐합,해외투자등 각종 기업활동과 관련된 인.허가권이나 규제장치를 장악하면서 기업을 옥죄다보니 구조조정작업은 자칫 실기(失機)하기 십상이다.

재계는“경기전망이 불투명한데도 불구하고 신규사업을 벌이는 것 자체가 실제론 리스크가 큰 데 이를 특혜로 보는 시각이 문제”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또“기업이 어렵게 단안을 내려 체질개선에 나서려 해도 정부가 이를 가로막는 격”이라고 아우성이다.

재계는 이와관련,신임 강경식(姜慶植)경제부총리가 최근“경쟁력이 떨어진 산업은 도태되고 창의성있는 기업이 산업의 주역이 돼야 한다”며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데 주목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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