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yle] 화장해 주는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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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 5층의 한 음식점에서 최근 색조 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의 파티 메이크업 강좌가 열렸다. 자리를 잡고 앉은 수십 명의 손님은 모두 여성. 강연과 시범을 위해 서 있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다섯 명은 모두 남자였다.

“SPH 지수 50인 자외선 차단제를 살 땐 꼭 플러스가 세 개 붙은 걸 사야 해요. 그래야 UV A와 B를 모두 차단해 주거든요”

채성은 팀장이 강연을 시작하자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여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해주는 남자,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그들의 시대가 열렸다. 여성 고객들은 거리낌 없이 이들에게 얼굴을 맡긴다. 프로모션팀 7인이 모두 남자인 비디비치 팀을 통해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여성의 직업으로 여겨져 온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현대백화점 본점에 입점한 화장품 브랜드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23명 가운데 6명이 남자다. 고등학교 동창 출신 손대식·박태윤 아티스트는 9월 자신들만의 색조 화장품 브랜드를 런칭했다.

수빈 아카데미 메이크업 강사 선우윤재(34·여)씨는 남자도 여자 못지 않게 외모와 옷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면서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수가 늘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남자도 이발소 대신 미장원에 머리 하러 가는 세상이잖아요. 남성을 타깃으로 한 화장품도 많이 나오고…. 메이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상한 게 아니죠.”

화장하는 남자가 늘어났다 해도 10대 후반, 혹은 20대에 들어서면서 매일 화장을 생활처럼 하는 여성들과 경쟁이 가능할까. 대부분의 메이크업 학원과 대학에서는 메이크업 개론에서 시작, 메이크업 도구에 대한 기초 지식을 배운다. 여성 수강생 중에도 아예 처음부터 잘못된 지식을 배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울 수 있는 남학생이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한다. 선씨는 “남자 수강생 중에 여성을 능가하는 섬세함을 가진 학생도 많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처음에 넘어야 할 벽은 분명 있다. 초반 여성들에 둘러싸여 함께 공부하는 어색함을 뛰어넘어야 하는 데다 실습의 어려움도 감당해야 한다. 여자 수강생은 배운 것을 자신의 얼굴에 직접 실험할 수 있지만, 남자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채성은 팀장은 “남자보다 좋은 여건에 있는 여성을 이기기 위해선 그들보다 두 배 더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예전보다 꼼꼼하고 섬세해졌다고 말하더라고요. 제스처도 많이 쓰고…. 이제 말도 공손해졌대요.”

비디비치 프로모션팀 2팀을 책임지는 임채열(27)팀장은 5년차 프로다. 그는 “동료도 여자고, 고객도 여자이다 보니 조금씩 여성스러워지는 단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학창 시절 그림을 그렸던 그는 분장으로 전환했다가 다시 메이크업으로 옮겼다. 임씨는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조금만 잘하면 금방 눈에 띄는 반면 작은 실수를 해도 금방 눈에 띄는 단점이 있다”라고 털어놨다. 같은 팀 황병윤(25)씨는 신학대에 다니다 4학년이 되어서야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메이크업 학원에 등록한 경우. 그는 “커플이 함께 찾아오면 여자분에게 메이크업을 해주면서도 정작 설명은 남자분에게 해주게 된다”라고 말했다. 남자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신경 쓰게 된다는 것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우아하게만 보인다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프로모션 팀은 한 달에 몇 번씩 지방 출장을 다니며 메이크업 쇼를 준비해야 한다. 행사가 잦다 보니 쉬는 날도 일정치 않다. 특히 프로모션 팀에 남자가 많은 이유다.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대한 여성 고객의 태도와 시각 변화는 이들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동력이 됐다.

“남자이기 때문에 더 객관적으로 여자 얼굴을 보는 것 같아요. 또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여자보다 좀 더 전문적으로 일에 매달린다는 생각도 들고요.”

비디비치 파티 메이크업 강좌에서 만난 민선미(42·여)씨가 말했다. 그녀는 “요즘 어느 화장품 매장에 가더라도 남자가 많다”라며 “조선시대도 아닌데 누구든 잘하는 사람에게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옆자리에 서 있던 40대 여성도 “남자들이 화장품 설명도 더 전문적으로 잘해주는 것 같다”라고 거들었다.

임 팀장은 “3~4년 전만 해도 10명의 여성 고객에게 메이크업을 해줄 때 절반은 거절하거나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 한마디 없이 메이크업을 받았지만 최근엔 오히려 먼저 요청하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사이트인 지마켓은 8일부터 11일까지 4일간 자사 사이트에서 남성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설문에 참여한 10~60대 여성고객 1049명 중 64.6%가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메이크업을 받을 기회가 온다면 받아보겠다’라고 답했다.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메이크업을 받으면 어떨 것 같은지’라는 질문에는 45.3%가 ‘여자에게 받는 것과 별 차이 없을 것 같다’, 14%는 ‘여자한테 받는 것보다 좋을 것 같다’라고 답해 ‘부담스러울 것 같다(40.7%)’를 넘어섰다.

남성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지마켓이 같은 기간 남성 80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내 여자친구가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메이크업을 받는다면’이라는 질문에 ‘좋다’란 대답(40%)과 ‘상관없다’란 답(27.9%)을 합쳐 70%로 ‘싫다(32.1%)’의 거의 두 배에 이르렀다.  

글=송지혜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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