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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북송 재일교포 9만명 … 일본은 그들을 ‘추방’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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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북한행 엑서더스
테사 모리스 - 스즈키 지음
한철호 옮김, 책과함께, 446쪽, 1만8000원

남쪽에서는 ‘북송’이라 부른다. 북쪽에서는 ‘귀국’이라고 한다. 1959년 말부터 84년 사이 9만3340명의 재일 조선인이 북으로 간 사건을 말한다. 25년에 걸친 장기사업이라지만, 첫 두 해 동안에 전체 인원의 80%가 집중됐다. 당시 재일 조선인 사회 인구의 6분의 1 가량이 순식간에 사라진 셈이다. 그들은 정말로 ‘사라져’ 버렸다. 북에서 보내오던 편지는 몇 해 사이에 뜸해졌다. 고작 50년의 세월 동안 이 10만에 달하는 ‘이주민’의 삶은 역사의 문서고 속에 갇혀 버렸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간 것일까? 아니다. 일본을 떠나 북한으로 간 이들의 97%는 남한 출신이었다. 이들은 모두 ‘공산주의자’들이었나? 그들이 원한 건 ‘이념’이라기보다는 일자리였다.

이 사건은 ▶일본에선 ‘인도주의’ 정신의 승리로 ▶북한에선 ‘사회주의’ 조국의 승리로 ▶남한에선 북한과 조총련의 공작 정도로 공식화되고 잊혀졌다. 90년대 들어 그들 중 일부가 탈북자의 행렬 속에서 ‘공화국의 세월’을 독백할 뿐이다.

책은 반세기 전 재일교포를 상대로 대대적으로 이뤄진 ‘북한 귀국 사업’의 이면을 추적했다. 저자에게 있어 이 ‘귀국 사업’은 일본이 의도적으로 치밀하게 준비한 사실상의 ‘추방’이었다. 최근 기밀에서 해제된 국제적십자위원회의 문서들을 검토해 내린 결론이다.

1959년 12월 14일, 일본 니가타 항에서 북한 청진항으로 향하는 제1차 귀국선. 84년까지 재일교포 9만 여명이 북한으로 이주했다. 북으로의 ‘귀국’은 사실상 일본으로부터의 ‘추방’이었다. [책과함께 제공]

조총련이 북한의 강력한 뒷받침을 받아 재일 조선인 사회에서 대규모 ‘귀국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58년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앞선 시점인 55년 말부터 일본 적십자사는 재일 조선인의 ‘대규모 퇴거’를 준비한다.

패전 뒤 일본에서 재일 조선인은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사상적으로 불온한 이민족이었을 뿐이다. 일본 적십자는 북한 이주를 희망하는 이들이 6만 명이라는 보고를 비밀리에 국제적십자위원회에 내놓는다. 하지만 56년 국제적십자위원회와 비밀 회견을 가진 조총련은 귀국 희망자 규모를 3만 명이라고 말한다. 같은 해 북한 당국은 귀국 희망자 규모를 고작 700여명 규모로 추산했을 뿐이다.

북한 당국조차 1000명 이하로 예상했던 귀국자 규모가 불과 3~4년 만에 100배 가까이 치솟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정말로 자발적으로 북한행을 택했을까.

저자는 기밀 문서를 중심으로 제네바, 평양, 제주도, 도쿄를 오가며 이 미스터리를 풀어 나간다. 저자는 영국 출신으로 일본인과 결혼해 호주에 정착한 학자다. 남한·북한·일본, 모두로부터의 제3자인 그가 일본에서 북한으로 간 남한 출신 한국인들의 삶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일본에서 버림 받고, 남한이 방기하고, 북한이 이용했던 이들의 삶은 어쩌면 제3자의 시선에서 가장 애틋하게 그려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저자의 역사적 퍼즐 맞추기가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특히 북한이 대규모 이주를 수용하기로 한 배경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족하다. 저자는 58년 북한 주둔 중공군의 최종 철수로 인한 북측의 인력난과 안보 불안을 근거로 든다. 하지만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중공군의 철수는 북·중 간의 합의에 따른 계획적인 사안으로 북한이 갑작스레 대안을 마련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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